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에 대한 귀화요건 등 완화 내용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 김춘자씨 등 7명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하고 나서 태극기를 전달해주었다. @사진=법무부 제공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 김춘자씨 등 7명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하고 나서 태극기를 전달해주었다. @사진=법무부 제공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에 즈음하여 제도 개선을 통한 국적취득 지원 -

- 60세 이상 유공자 후손 배우자 면접 면제, 생계능력 인정범위 확대 등 귀화절차 완화 -

 
[법무부=EKW동포세계신문] “이 나이 되도록 면접이라는 것을 봐 본 적이 없어요. 한국말은 잘 하는데 면접문제가 어려워서 자꾸 떨어지다가 면접시험이 면제돼서 이제 한국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감사합니다.”(독립유공자 이근수의 손자 배우자 신옥자 씨)

 “남편이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도 한국 국적 따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 불안했어요. 남편과 자식들은 모두 한국에 귀화했는데 이제 저도 가족들과 함께 한국인으로 살 수 있게 됐다니까 너무 기쁩니다.”(독립유공자 허주경의 손자 배우자 김춘자 씨)

 

 지난 49일 오전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국적증서를 받게 된 독립유공자 후손의 배우자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쁜 마음을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3월부터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에게도 60세 이상 면접시험 면제 등 귀화요건 완화 정책을 실시하고,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 중국동포 7명에게 특별귀화 한국국적증서를 수여하는 행사도 처음으로 가졌다.
 
이번 수여식은 제99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일(413)에 즈음하여 국정과제인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구현하고, 독립유공자 후손 가족을 예우하여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국적증서를 수여한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를 대표하여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태극기를 전달받은 김춘자씨가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기쁨을 나타내보였다.
국적증서를 수여한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를 대표하여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태극기를 전달받은 김춘자씨가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기쁨을 나타내보였다.



 배우자의 국적 취득을 축하하기 위해 독립유공자 후손 등 가족들이 함께 참석한 이날 행사는 임시정부 관련 영상 시청, 독립유공자 공적 소개, 국적증서 및 태극기 수여, 귀화자 선서, 장관 축사 등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독립유공자의 직계후손에 대하여는 특별귀화 절차를 통해 필기면접시험을 면제하여 신속히 국적을 부여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손의 배우자에 대하여는 국적취득과 관련한 예우가 따로 없었던 관계로 고령인 경우 필기시험은 면제되었으나 면접시험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법무부는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2018. 3. 1. 국적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하여 독립유공자 후손의 배우자에 대한 귀화 면접시험을 면제(60세 이상)하고, 생계유지능력 인정범위도 확대(보훈처 생활지원금 등 인정)하는 등 귀화요건을 완화하였다.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에 대한 귀화요건 등 완화 내용

(‘18. 3월 시행)

구분

종전

개선

생계유지능력

별도 규정 없음

보훈처의 생활지원금 등 인정

면접시험

면접 대상

60세 이상 면제

귀화 심사기간

통상의 1/2 적용

최우선 처리

 


4
9일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자로 국적증서를 받게 된 <독립유공자 공적개요>

 

[1] 차도선

대한제국군 진위대의 하사(下士)로 복무. 1907년 홍범도(洪範圖)와 의병을 일으켰으며, 19194월에는 신봉황(申鳳荒)과 함께 충의사(忠義士)를 조직하여 2백 명의 독립군을 모집, 훈련시켜 국내진입 계획 세움. 동년 9월에는 무송현(撫松縣)에서 약 5백 명의 독립군을 모집하여 훈련시키는 등 무장 항일투쟁을 계속

 

국적증서 수여자: 외증손녀 배우자 박대로 (68/)

 

[2] 조근백

19063월 정용기(鄭鏞基)가 경북 영천(永川)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영양(英陽청송(靑松진보(眞寶) 등지를 전전하며 활동. 그 뒤 이듬해 7월 입암(立岩) 전투에서 정용기 의병장이 전사하고 의진이 해산되자, 은둔하였으나 1908620일 자택에서 일군에게 피살

 

국적증서 수여자: 증손녀 배우자 이덕원(67/)

 

[3] 허주경

함북 회령(會寧) 부근에서 항일활동을 하던 중 19201027일 일군의 습격을 받아 순국

 

국적증서 수여자: 손자 배우자 김춘자(63/)

 

[4] 오주혁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항의하여 진신유생(縉紳儒生)들과 상소운동을 전개. 19108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유인석, 이상설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인 성명회(聲明會)에 참여. 이후 중국 혼춘(琿春)과 노령(露領) 블라디보스톡을 오가며 교육사업 및 군자금 모집, 무장투쟁 등을 병행. 1922년에는 흑룡강성 오운현 배달둔에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 혈성단(血誠團)의 일원으로 활동

 

국적증서 수여자: 외증손자 배우자 설순화(61/)

 

[5] 이근수

1911년 중국 서간도(西間島)로 이주한 후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마호구(馬毫溝) 한인학교(韓人學校)에서 한문교사로 활동하며 항일의식을 고취. 서로군정서 총재(總裁)로부터 조선특별파견원(朝鮮特別派遣員)으로 임명. 19205월에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2458일 순국

 

국적증서 수여자: 손자 배우자 신옥자(63/)

 

[6]이경재

19193·1운동 이후 독립군에 가담하여 의군단(義軍團) 참모(參謀) 겸 비서(秘書)로 활동. 동단(同團)은 청산리 전투, 특히 어랑촌 전투에 참가하여 큰 전과를 올림. 192011월 일군(日軍)에게 저항하다가 순국

 

국적증서 수여자: 외증손녀 배우자 김정산(64/)

[7] 채관우

19284월 중국 북간도 왕청현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299월 제2차 간도공산당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복역

 

국적증서 수여자: 손녀 배우자 조범국(63/)

저작권자 © EKW이코리아월드(동포세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