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주최 1948년 4.24 교육투쟁 70주년을 기념 특별초청강연

4.24 교육투쟁 70주년을 기념하는 몽당연필의 첫번째 이야기

빼앗길 수 없었던 우리학교” _ 재일동포 2세 배영애 선생 특별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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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보도자료 전문=EKW동포세계신문]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대표 권해효)’이 재일민족교육 역사의 중요 사건인 19484.24 교육투쟁 70주년을 기념하여 421() 오후 4시에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 3층 바실리오 홀에서 사건 당시의 생존자인 재일동포 배영애 씨의 특별강연회를 개최한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이하 몽당연필)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일본 도호쿠, 후쿠시마, 이바라키 지방의 조선학교 구호를 위해 설립되었다. 1년 동안 콘서트와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여 활동을 마친 후, 서울시 등록 NPO로 전환하여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조선학교의 존재와 차별 실태를 알리고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이번 특별강연의 강사인 올 해 78세의 배영애 씨는 재일동포 2세로서 평생을 재일민족교육에 헌신한 교육자이며 활동가이다. 당시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소재 모리야마 조선소학교 1학년이었던 8살 생일에 30여명의 경찰이 학교를 습격해 남아있던 동급생, 언니, 오빠들과 함께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이후 아이치에서 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통신학부를 거쳐 교사가 되어 후쿠오카 지역의 조선학교와 조선유치원에서 근무했다. 31년간의 교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아이치 현으로 와서는 일본인들에게 치마저고리 입히기 등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전국의 조선학교를 다니면서 동포 4, 5세 학생들에게 4.24 교육투쟁의 경험을 알리는 강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배영애 씨가 고쿠라 조선유치원의 원장을 역임하고 있던 1989, 북을 방문했을 때 북쪽의 교원이 보여 준 사진 한 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헬멧과 곤봉으로 무장한 경관에 의해 세 명의 초급생이 학교 밖으로 쫓겨나는 사진이었다. 그 중 한 아이가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 사진은 4.24교육투쟁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지금도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4.24 교육투쟁은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1945년 조국해방을 일본에서 맞은 재일조선인은 불과 1년만에 일본 전국에 수 많은 조선학교를 세웠다. 조국으로 돌아갈 희망에 부푼 그들에게 자녀들의 우리말, 우리문화 교육은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해방 당시 230만에 달하던 재일동포 중 많은 수가 귀국하고 남아있던 60만의 재일동포가 운영하던 조선학교가 무려 556개에 달했다.

 

당시 패전국 일본을 관리하고 있던 연합군총사령부(GHQ)는 재일조선인을 적국민이자 해방민이라는 이중적 잣대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재일조선인의 자발적인 교육조직인 조선학교를 불온한 사상을 가르치는 기관으로 여기게 했다. 19481, 마침내 GHQ는 일본정부를 움직여 조선어로 이뤄지는 수업과 조선어 교육을 정규 교과에서 제외시키고 방과 후 수업으로 취급하도록지시했다. 이는 민족교육에 대한 전면 부정이었고 당연히 조선인들의 저항은 거셌다.

 

저항의 물결은 야마구치 현의 시모노세키에서 시작하여 오사카, 히로시마, 효고 등 일본 전역으로 들불 처럼 번져갔다. 그 중 가장 격렬한 저항이 있었던 지역이 바로 효고현 고베시였다. 424일 효고 현청에 1만명의 조선인들이 모여 지사실을 점거하고 현지사와 교섭을 요구해 학교 퍠쇄 철회와 체포된 조선인 석방 등 5개 항목의 합의를 얻어냈다. 그러나 이 날 밤 GHQ는 일본 점령기간 최초이자 최후인 비상계엄사태를 선포하고 합의 문서 무효를 선언, 3일 간 군대를 동원해 수천 명의 재일조선인을 검거했다. (경찰 자료 1590, 공안자료 7295) 사태는 점점 심각한 지경으로 치달아 426일 오사카에서 열린 3만 명의 집회를 해산하기 위해 경찰이 발포한 총탄에 16세 김태일 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일조선인들의 격렬한 저항은 이어졌고 55일 조선인 교육대책위원회와 문부성 측이 일본 교육령의 범위 내에서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각서를 교환하며 수습책이 마련되었다. 이후 제2차 폐쇄(19499)와 공립, 도립 조선인학교 시절이라는 암흑기를 거쳤으나 1955년 다시 부활하게 된 조선학교는 현재 일본 전국 64, 8,000명의 재일동포 자녀들이 70여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4.24 교육투쟁은 비록 2차 폐쇄라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을 겪었으나 아직도 재일민족교육의 역사에서 자랑찬 승리의 역사로 재일조선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한편 이번 행사를 마련한 몽당연필의 대표 권해효 씨는 “2018년 현재도 재일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의 교육 보조금을 동결시키거나 고교 수업료 무상화에서 조선학교만 제외시키는 등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오죽했으면 재학생들이 나서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겠는가.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가는 통일 평화의 시대에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도록 올 해에는 반드시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고 다짐했다. 한편 몽당연필에서는 올 해 4.24 교육투쟁 70주년을 맞아 이번 강연을 시작으로 고교무상화 적용을 위한 거리행동, 재일동포와 민족교육을 다룬 연극과 영화 상영, 특별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문의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국장 김명준 010-2708-5293

이메일 mongdangpen21@gmail.com

홈페이지 www.mongd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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