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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주동완 한국외대 부교수에게 묻다 … “중국동포 만나보니 어떻습니까?”

“동포들이 권익 찾기 위해선 스스로 정치력 키워야”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기자 | 2018.11.23. 06:14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재미동포 주동완 부교수

한국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가족들을 위한 헌신과 치열한 삶을 살아온 80대의 우리들의 어머니 세대 모습이 지금 5,60대의 중국동포 여성들에서 느껴진다.”
 
재외동포에 대해 한국사회에 알리기 위해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의 코리아타운과 한인을 위한 콘텐츠(위키백과)를 만들어 알리고자 하는 일
 
[인터뷰=동포세계신문] 한국외국어대 지식콘텐츠학부 주동완 부교수(60)는 국내 체류 고려인과 조선족 동포 집거지를 탐방하며 동포의 삶을 듣고 정리하며 사진을 찍으며 학부생들과 열심히 문화콘텐츠를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언제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중국동포 밀집거주지역인 서울 가리봉동을 찾는 그는 재미동포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쏠린다.
주 교수는 1958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해, 서울생활 27년을 하고 19853월 미국으로 유학을 가 미국 뉴욕에서 시민권을 취득해 미국생활 27년을 하고 2013년 다시 한국으로 역유학을 왔다. 3막의 인생을 재미동포 신분으로 한국에서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재외한인과 코리아타운 연구를 해온 주 교수는 한국에 와서는 중국과 CIS지역에서 온 동포들에 의해 형성된 고려인마을, 중국동포타운으로 불리우는 특이한 코리아타운을 연구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과 이주민을 만나 인터뷰하고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구축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재미동포가 바라본 중국동포는 어떤지 사뭇 궁금해진다. 더불어 최근 미국에서는 재미동포 출신 연방하원이 탄생해 동포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주 교수는 중국동포 모임이 있는 곳에 가서 발언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포들이 권익을 찾기 위해서는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27년간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온 그가 절실히 느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주동완 부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미국 선거에서 재미동포의 연방하원의원 진출이 주요관심을 끌었습니다. 앤디 김은 당선이 되었고 영 김은 초접전을 이루다 실패했는데요. 재미동포의 하원의원 진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 재미동포들이 미국 주류사회의 정치 참여에 관심을 갖고 한인들의 정치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은 1992LA폭동 이후부터이다. 당시 미국의 언론들이 LA폭동의 원인을 미국의 고질적인 흑·백차별이 아닌 한·흑갈등으로 몰아가고, LA코리아타운이 방화와 약탈로 초토화되고 있어도 LA경찰들은 코리아타운 북쪽에 있는 백인 부자들의 거주지인 비버리 힐스만 지키고 내려오지를 않았다. 그때 재미동포들은 정치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아메리칸 드림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이라는 것을 알았고 한인들을 대변해줄 정치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993년에 캘리포니아주에서 김창준 미연방 하원의원(공화당)이 배출된 이래로 25년 만에 뉴저지주에서 앤디 김 미연방 하원의원(민주당)이 선출되었다. 이는 재미한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임에는 분명하고 앞으로 재미동포와 한국과의 문제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앤디 김은 재미동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역구인 뉴저지주 중부의 제3선거구를 대표하는 연방의원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앤디 김이 민주당의 당론에 따라 재미한인과 한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앤디 김의 승리는 재미한인들의 정치 참여와 정치력 신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11월15일 YTN방송 캡쳐
 
재미동포사회의 미국에서 정치력 신장이 재미동포 이미지와 위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사례를 들어준다면?
 
= 미국은 정말 정치가 생활이다. 미국의 정치는 일반인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직접적인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만큼 정치인들도 지역주민과 밀착되어 주민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일을 한다. 따라서 재미동포들의 정치력 신장은 재미동포들의 생활의 폭을 그만큼 넓혀주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동포들의 생활의 폭이 넓어지면 그만큼 재미동포들의 이미지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일례로 2013년 론 김이 뉴욕시 한인밀집거주지역인 플러싱의 40선거구에서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번 2018년 선거에서 다시 압승하여 4선 의원이 되었는데, 론 김 하원의원이 뉴욕시의 재미한인 사회를 대변한 후로 뉴욕 한인사회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뉴욕시 한인들의 단체 활동과 정부 지원금을 받는 데에도 직접, 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뉴욕시 한인사회의 발전을 의미한다.
 
재미동포들이 정치력 신장을 위해 노력한 것은?
 
= 정치력 신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몇몇 사람의 말과 능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정치력 신장은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주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의식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유권자 등록이 중요하다. 뉴욕의 경우를 예로 들면 1996년부터 한인유권자센터가 발족되어 뉴욕한인들의 유권자 등록운동을 전개하여 유권자수를 늘리고 선거참여를 북돋았다. 또 유권자 등록을 위해서는 미국 시민권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으로 귀화하여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2013년 론 김 뉴욕주 하원의원의 선출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 뉴욕 등에도 중국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안다. 한인사회와 어떤 관계를 이루어가고 있나?
 
= 뉴욕시의 플러싱 지역은 원래 1970년대 초반부터 한인들의 밀집 거주 지역으로 미국 동부지역 최대의 코리아타운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중국인들로 인해 지금은 플러싱 중심지역을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뉴욕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동포들은 주로 한인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한인 종업원과 중국동포 종업원 간에 임금차별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후 중국동포들이 한인과 중국인들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이러한 차별은 거의 사라졌다. 예를 들면 현재 많은 중국동포들이 한인들의 식당에서 일하면서 한인들의 식당과 많은 중국인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뉴욕 한인들과 중국동포들이 서로 상생하고 있으며, 매년 추석 때마다 열리는 뉴욕추석맞이대잔치에도 중국동포 단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재미동포 입장에서 중국동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중국동포들은 우리 한민족의 민족성과 민족의 전통을 잘 보존해왔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은 중국동포들이 우리 민족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고도 여겨진다. 내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초, 우연한 기회에 뉴욕에서 중국동포 부부와 형제들을 만나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그들을 통해서 중국동포들에 관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중국동포들은 정말 열심히 살고 가족애, 형제애가 두텁고, 친구 간에 의리가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1992년에 중국 연길로 돌아간 후에 2013년 내가 연길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11년 만에 만난 나를 어찌나 반갑게 맞이 해주던지... 일주일 동안 그 친구들 집에 머물렀었는데 내가 돈을 전혀 쓰지 못하게 했다. 미국에서 벌어간 돈으로 잘 살고 있는 중국동포 친구들 가족을 보니 내 마음도 흐뭇했다. 하지만 너무 갑자기 변한 중국의 조선족 사회, 특히 농촌의 조선족사회가 많이 붕괴된 것이 마음 아프다.

서울특별시 외국인지원센터 서남권글로벌센터
최초 중국동포 전용창구를 개설한 구로동 하나은행

가리봉동에서 중국식품점을 20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는 한국인 조순희씨를 인터뷰하고 있는 주동완 부교수
 
가리봉동 등 동포집거지를 연구하면서 느끼는 점은?
 
= 가리봉동은 정말 소중한 곳이다. 가리봉동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수출산업 전진기지였던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주거지였으며,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중국동포들의 집거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많이 유입되고 있다. 따라서 가리봉동은 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 그리고 중국인들의 많은 삶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역이다. 지역개발 하는 데 있어서 건물을 새로 짓고, 길을 포장하는 유형적인 개발도 중요하지만 여러 장소와 길 위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여 그 지역의 무형적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가리봉은 그러한 무한한 무형적 가치를 지닌 문화적 명소가 되기에 충분한 지역이며, 그러한 문화적 요소를 가리봉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이 지니고 있다.

2018가리봉동도시재생지원 선정사업 '가리봉텔러2' 연구팀으로 활동하는 주동완 부교수가 가리봉동에서 압록강반점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동포 최정순씨를 인터뷰하고 함께 활동하고 있는 팀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가리봉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생애 인터뷰를 정리하였는데, 이들의 삶 속에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 대부분의 중국동포들은 그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중국으로 이주했거나 중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렇게 살다가 다시 모국인 중국을 떠나 조국인 한국을 찾아왔다. 하지만 조국인 한국에서의 삶 또한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70여 만 명의 중국동포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사연을 갖고 있다. 중국동포들의 생애 인터뷰를 하면서 중국동포들은 그러한 삶 속에서도 참으로 꿋꿋한 삶을 살아왔다고 느꼈다. 특히 5,60대 중국동포 여성들은 지금 80대인 나의 어머니 세대와 같은 생각과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음을 느꼈다. 나의 어머니 세대는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 해방과 6.25 한국전쟁, 피난살이, 혼란한 정치상황, 허리띠 졸라맨 경제건설 등 한국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가족들을 위한 헌신과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80대의 우리들의 어머니 세대 모습이 지금 5,60대의 중국동포 여성들에서 느껴진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없이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 없듯이, 지금의 중국동포 여성들이 없이는 중국동포의 미래는 약속하기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가리봉텔러2 연구사업팀의 기획회의, 주동완 부교수가 한국외국어대 임영상 명예교수(우측), 중국동포로서 활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정금령(홍익대 강사, 미술), 림학(한국외대 박사과정)

대학에서 글로벌문화콘텐츠학을 공부하게 된 배경은?
 
= 저의 주 관심사는 해외의 코리아타운과 한인들의 이민 역사 자료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모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아카이빙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2010년에 학술회의 참가 차 뉴욕을 방문하신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임영상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임 교수님으로부터 글로벌문화콘텐츠학에 대한 소개말씀을 듣고, 내가 원하던 해외한인들의 아카이빙 콘텐츠를 만드는데 필요한 공부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알고 2013년에 한국외대에서 글로벌문화콘텐츠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향후 연구 및 활동계획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외대에서 강사로 강의했으며, 2018년에는 한국외대 정식교원으로 임용되어 부교수가 됐다. 나름대로 새로운 분야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경험을 쌓고, 많은 연구자들을 만나 교류도 했다. 이제는 뉴욕으로 돌아가 내가 하고자 했던 해외한인들의 코리아타운과 한인들에 대한 아카이빙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 아카이빙 콘텐츠란 해외한인들의 코리아타운과 한인들에 대한 위키백과사전을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2017년에 이미 뉴욕에 ‘K-town문화콘텐츠연구센터라는 비즈니스 등록도 마쳤다. 나의 힘이 닿는대로 세계 곳곳에 있는 한인회, 한인단체, 한인들과 교류하면서 세계에 산재한 코리아타운과 한인들에 대해 기록하고 콘텐츠자료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한국사회의 재외동포에 대한 이미지나 인식 개선에 대해 조언을 준다면?
 
= 한국사회는 재외동포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일제 강점기 때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등지에 살고 있었던 독립군과 독립운동가들인 고려인과 조선족에게 빚을 졌고, 상해임시정부 시절에는 독립자금을 모아 준 재미동포들에게 빚을 졌고, 한국의 근대화 시기에는 한국에 투자해준 재일동포, 재독동포 및 남미로 이주간 동포들에게 빚을 졌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화 시기에는 재미동포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해외동포 인재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재외동포에 대한 이미지나 인식은 아직까지 무관심 또는 무시내지는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재외동포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관심, 무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 재외동포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리고 교육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의 코리아타운과 한인을 위한 콘텐츠(위키백과)를 만들어 알리고자 하는 일이 아주 필요하고 중요하다.
 
주동완(朱東完, Joo Dong Wan,재미동포,1958년생)
1958년 경기도 평택 출생, 27년을 한국에서 살고 19853월 미국으로 이민, 27년을 미국 뉴욕에서 살았다. 55세 되던 2013년에 다시 귀국하여 한국외대에 역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8. 3 –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콘텐츠학부 부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융복합콘텐츠연구센터 센터장
2017. 1 – 현재 K-Town문화콘텐츠연구센터 센터장
2013. 9 – 2016. 8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 박사과정 졸업
2009. 9 – 2012. 6 재외한인사회연구소, 연구원
1993. 9 – 2010. 6 New York Theological Seminary, 전임교수
1989. 1 – 현재 코리아리서치센터(Korean Research Center), 원장
1985. 9 – 1993. 6 City University of New York at Graudate Center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1983. 3 – 1985. 3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
1981. 3 – 1983. 2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회전공 석사과정 졸업
1977. 3 – 1981. 2 고려대학교 사회학 학사과정 졸업
학위논문
2016 해외 한인문화의 자원화 방안 연구: 뉴욕 코리아타운 축제의 지식맵 구축을 중심으로박사학위논문, 한국외국어대학교대학원.
1983 유교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부제: 실학사상의 사회학적 조명석사학위논문, 한국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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