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18년째 요구해온 중국동포 한희찬 씨

“한번만이라도 현장 조사 나왔으면…” 독립운동가 발굴에 소극적인 한국정부에 일침

동포세계신문 김경록 기자 | 2019.01.24. 21:42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 한희찬 씨

중국 내몽골 우란호트시
(왕예모) 출신 한희찬(72)씨는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다고 주장하며 지난 18년째 국가보훈처를 수십 차례 다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씨는 아버지는 경북 영천에서 출생하고 1929년 중국 내몽골지역으로 이주해 일제시기에 이곳에서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동광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에 기여했다며 그 기록이 중국 요녕성 심양시에 있는 요녕성 당안관에 남아있고, 1984년 내몽골대학 출판사에서 출판한 내몽골조선민족(중국어 판)167페이지에 나와 있다.”고 제시하고 인정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것이다.

그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해 보면, 조선민회 회장이고 동광학교 교감인 한재수(韓在秀)가 교장 박범룡과 함께 고발로 인해 일본헌병대에 붙잡혀 고문과 구속되어 있다가 조선농민들의 항의로 45일만에 석방되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내용 앞부분에는 1931~1932년 사이에 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봉생(독립운동가)이 독립투사 양성소인 동광학교에 와서 교편을 잡으면서 반만항일군(反滿抗日軍) 조직에 적극 노력하였다는 내용도 나온다.

또한 한씨는 아버지가 내몽골 조선민회 회장으로 있을 당시 동광학교를 설립한 증명서류와 함께, 1935년 한국인 이주민들의 생활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농장과 함께 학교설립을 추진했으나 그 지방 정부가 협조에 게을리하여 협상이 무산이 되게 되자 항의 차원에서 '음독자살' 소동을 벌였던 사건 기록도 제시했다.

 
△ 1984년 내몽골대학 출판사에서 출판한 「내몽골조선민족(중국어 판)」 167페이지 내용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 2001활동거증 미비. 활동이후 행적 미상”, 2002활동사실에 관한 입증자료 미비, 1930년대 이후 사망시까지 행적 불분명”, 2014, 2017년에도 공적내용에 대한 활동 당시의 객관적인 입증자료 미비, 1930년대 이후 사망시까지 행적 불분명포상 불허사유를 밝혔다. 2018년에도 사후행적 이상이라는 냉정한 답변만 보내왔다.

 
△2018년 국가보훈처 답변자료




한희찬 씨는 
7남매 중 막내이다. 1945년 해방정국을 맞아 아버지는 한국 고향땅으로 돌아오고자 하였지만 앞서 한국에 보낸 딸(한희찬씨 큰 누이) 부부가 아이를 잃게 되는 등 난국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7남매 가족뿐만 아니라 내몽골의 조선민회 회장으로 아버지 결정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다 남북이 갈리고 길이 막혀 중국에 남아있게 된 것이죠. 아버지는 그리운 고향 땅으로 돌아오고 싶어하셨어요, 그러지 못하시고 1981년 돌아가셨지요. 내라도 아버지 소원을 이루어 드리자 해서 1991년 한국에 계신 큰 누이 초청으로 한국에 왔는데, 불법체류 생활을 하다 2000년 땅 소유문제로 소송을 통해 합법체류자가 되었죠. 마침 2004년 국적법이 개정되어 국적회복 대상이 되어 지금까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아버지 소원을 이루어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2018년 한희찬씨가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아버지 한재수 독립운동 공적사황


한희찬 씨는 지난해
8.15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의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 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라는 메세지에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말뿐인가? 국가보훈처에 찾아가 상담을 해보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것이 한 씨의 말이다. 그는 말한다.

아버지가 활동하셨던 곳 그 현장에 와서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한번도 나와보지 않는다.”

면서 독립운동가 발굴에 소극적인 한국정부에 야속한 마음을 드러냈다.

 

한희찬 씨와 같이 아버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였지만 입증서류 미비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중국동포들이 적지 않다. 이미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았지만 후손임을 입증하지 못해 서훈을 못 받은,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서훈 미전수자는 56백여명, 그중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는 2천여명이고 중국지역에서 활동한 미전수 독립유공자는 1,058명으로 가장 많다.




동포세계신문 후원 독자가 되어주세요[후원독자안내]


☞ 동포세계신문이 직접 운영하는 중국동포 커뮤니티 
특별광고 
 
동포세계신문 김경록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기획/특집 사설/칼럼

포토뉴스

뉴스랭킹 더보기

1
중국동포에게 한글이름 병기된 ...
2
「코리아타운 사람들」북파티 도...
3
고려인마을로 부상하는 인천 ’...
4
다문화집거지 연구 “한국에서 ...
5
코리아타운 사람들 출판 기념 북...
6
글로벌⦁다문화 시대, 경기도를 ...
7
서울 거주 조선족 10년 전보다 4...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