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사랑방 ‘금메달미용실’을 찾아서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10여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하며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어온 중국동포가 있다. 꼬옥 20년 전 연변 훈춘에서 온 박영화(61)씨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박 씨는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로 왼쪽 눈과 오른쪽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이다.

박 씨를 소개해달라며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 설 명절 전. 설 연휴 기간에도 그는 장애인과 노인들에게 미용봉사활동을 펼쳤다.

마침 기자는 지난 218일 월요일 저녁 시간 때 약속을 하고 방문하였다. 금메달미용실, 60대 여성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가운데, 박영화 씨는 열심히 손님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있었다. 망원동에 사는 주민들이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신문에 게재해주신다니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중국동포이지만 한국에 와서 열심히 살면서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미용실 내부 벽에는 박 씨가 걸어온 발자취가 걸려있었다. 20여 년 전 중국 훈춘에서 한창 활동할 때 훈춘신문과 연변신문에 사진과 함께 게재된 중국어 기사가 액자로 걸려있고, 한국에 와서 20121231일자 마포장우회보에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 장애인을 위한 봉사자의 길을 걸어온 박영희 원장이라고 큰 제목과 함께 소개된 기사도 눈에 띄었다.


지체 3급인 박영화씨는 중국에서도 1980년부터 학생들에게 미용기술을 교육 한 후 경로원 등 봉사활동을 13년간 해왔다. 그 후 1999년 한국인과 결혼하여 입국한 후 중국의 미용면허가 한국에서 통용이 안 되어 2003년에 무궁화고등기술학교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여 2004년 미용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박영화 씨는 두 개의 사진 액자를 들어 보인다. 하나는 2011422일 마포구청장으로부터 받은 장애극복상 표창장이고, 또 하나는 학사모를 쓴 졸업사진이다. 중증장애인들에게 무료 미용을 해준 공로가 인정되어 2011년 장애인의 날에 받은 표창장과 늦은 나이에 한국외국어대 중국어학과를 졸업하고 찍은 사진이다.

중국에서 한족학교를 다녔어요. 집에서 조선어를 사용했지만 한국에 오니 한국말이 많이 서툴렀어요. 중국어보다는 오히려 한국어를 잘 하기 위해서 중국어과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사이버대학을 4년 동안 수료하고 학사모를 쓰게 되었습니다.”

박 씨는 배움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일을 돕기 위해 미용실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파워포인트, 엑셀 등 사무업무를 보기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 공부도 하였다.

언니는 정말 대단해요, 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인이 문이 좁아 못 들어오면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라도 미용봉사를 정성껏 해줍니다. 동네 노인들이 오면 몇 천원만 받고 미용을 해주어요, 동네에 소문이 났죠. 그래서 아주 먼 곳으로 이사 간 사람들도 머리 할 때면 이곳까지 전철을 타고 오는 분들 꽤 되요.”

10년 동안 박영화 씨를 지켜본 단골고객 이명순 씨의 말이다. 한마디로 금메달미용실은 망원동의 사랑방과 같은 곳이었다.

 

박씨는 22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4형제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장애인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에 왔지만 생활이 녹녹치 않았다. 한국에 처음 와서 지하철에서 신문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도 비행기표 값이 없어서 중국에 갈 수 없었을 때는 며칠이고 눈물만 흘리고 신세타령하며 삶의 의욕을 잃었다. 하지만 박 씨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초중고 한족학교를 다니면서도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그의 학창시절, 大四海 미용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커다란 바다를 품는 꿈을 갖도록 가르쳤던 훈춘에서 생활, 한국에 와서 주저앉을 수 없다. 열심히 사는 중국동포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누구보다 더욱 노력하였다.

2010년 국제헤어피부미용기능경기대회에서 박 씨는 금메달을 타냈다. 이는 중국 훈춘에서 고급미용사 기술원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국에서 열심히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 내 인생은 금메달이어야 한다.”

금메달 미용실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였다. 마음도 금메달이다.

어려운 사람만 보면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웃에서 알코올 중독 아빠와 살고 있는 아이를 3년 동안 돌봐주었고 홀로 사시는 노인 분들이 있으면 어떻게 지내시는지 자꾸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되요

봉사의 삶을 천직으로 여기며 사는 박영화 씨. 중국동포들이 많이 살지 않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살지만 그는 외롭지 않다.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의 별이 되어갔다.

박 씨는 다시 강조하여 말한다.

나 같이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것, 중국동포도 한국사회에 와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작권자 © EKW이코리아월드(동포세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