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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편] ‘훈춘식당’ 최정순의 이야기⓶ 가리봉동 소고기국밥

순탄치 않았던 한국행, 결국 2006년부터 시작한 가리봉동에서 제2의 삶

동포세계신문 편집국 기자 | 2019.03.22. 01:08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가리봉동에서 최정순씨가 팔고 있는 소고기국밥

<본문은 2018년 가리봉동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서울시, 구로구 지원)에 참가한 한중문화학당 가리봉텔러팀 임영상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주동완(재미동포, 코리아리서치 원장), 림학(한국외대 박사과정), 정금령(홍익대 미술 강사)이 합동취재해 작성하여, 가리봉사람이야기(소책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친척초청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으나 순탄하지 못했던 한국행
 
최정순 씨 훈춘에서 식당을 하고 있던 최정순은 처음에는 한국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먼저 한국에 들어간 여동생의 초청으로 마침내 200512월 한국에 왔다. 그러나 그녀의 한국행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몇 번 나오려고 시도했으나 비자를 받기가 힘이 들었다. 밀입국하려다 잡혀서 반달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결국 최정순도 한국인 브로커에게 당시 한국 돈으로 2000만원을 주고 비자를 받았다. 물론 빚을 얻었다.
 
지금은 여행사(행정사)가 비자업무를 도와주고 있으나,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중국동포들의 한국행은 거의 대부분 브로커를 통해야 했다. 1990년도에 나온 사람들은 집 한 채 팔아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브로커는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브로커한테 집까지 뜯기고 그래서 한국에 나오지도 못하고 집도 없어졌고 그래서 길바닥에서 죽으려고 하는데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한국사람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아들 유한영의 증언)
 
한국에 들어온 최정순은 숭실대 입구에서 4개월 동안 간병인 생활을 했다. 월급은 130만원이었다. 주인 남자가 거동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팠는데, 주인 남자나 부인 모두 선생 출신이었다. 한번은 주인 여자의 여동생이 말하기를, “우리 언니는 정말 아줌마를 잘 만났어. 아줌마처럼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없데.” 그래서 최정순은 자신이 괜찮게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환자인 주인 남자가 최정순의 월급을 5만원 깎았다. “내가 이렇게 환자고 아들도 공부하는데 월급 좀 깎으면 안 되냐고.”
 
최정순은 주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무조건 수락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동생도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녁에 생각할수록 잠이 오지 않았다. 일 잘한다고 칭찬하고서는 월급을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깎는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막내 여동생에게 기분이 나빠 이 일을 못하겠으니, 죽든 살든 돈을 빌려서라도 식당을 차려서 하겠다고 했다. 최정순은 돈 한 푼 없는 상태, 아니 한참 빚을 갚아야 할 지경이었다.
 

최정순은 한국에 입국해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집에서 노동계약 보험까지 다 들어주었다. 또 자신도 3년 동안 절대 안 나가겠다고 했다. 여주인과 대화를 했다. “나는 한국에 입국해서 아는 집이 사모님 집이니깐 3년 딱 벌어서 다시 오든지 가든지 하려 했는데, 건이 아빠가 이렇게 5만원을 깎으니 기분이 나쁘다.” 사실 환자인 주인 남자, 건이 아빠는 최정순이 없으면 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그녀가 휠체어에 앉혀주고 씻어주었다. 그는 간병인이 없어서는 단 하루도 생활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여주인은 최정순을 달랬다. “그러지 말고 내 아저씨 퇴직금으로 십만 원을 더 주겠다.”
 
일을 시작할 때보다 떠날 때에 잘 마무리해야 했다. 잘 합의를 해야 하지 자칫 집주인이 고발하면 불법이 될 수 있었다. 최정순은 좋은 말로 돌려 말했다. “저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건이 아빠를 진심으로 간병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하니깐 마음이 안 가서 손길도 안가니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환자가 휠체어 끌고 나왔다. “아주머님이 왜 그러는지? 나 꼴 메기려고 그런 것이죠?” 이에 최정순이 건이 아빠는 저를 꼴 메기려고 5만원 깎았냐고?” 환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알았다. 아주머니 다른데 가서 좀 더 벌라.” 최정순이 엘리베이터 타고 나오는데, 여주인이 울면서 다음이 또 꼭 오라.”고 했다.

 
마침내 가리봉동에 훈춘(압록강)식당을, 소고기국밥으로 돈을 벌어
 
2006620, 최정순은 여동생과 함께 가리봉동에 와서 압록강식당을 계약했다. 600만원을 빌렸다. 당시 가리봉동에는 압록강 식당 외에 금산각식당과 용정식당 두 곳이 전부였다. 최정순은 압록강식당을 기억하고 올 수 있는 사람을 위해 간판을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식당 문을 연지 7개월이 지나가는데, 압록강식당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근처의 금산각식당은 원래부터 잘 되었고, 용정식당도 오래된 식당이라 단골이 많았다. 최정순은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망해서 들어가겠구나.” 최정순은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도 자지 않고 가리봉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무엇을 하면 일어날 수 있을까.
식당들의 메뉴에 소고기국밥이 없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소고기를 어디서 파는 것도 모르고, 얼마인지도 모르고, ‘소고기국밥메뉴를 식당 유리에 붙였다. 축산물도매시장에 소고기를 사러 갔는데, 버스 있는 것도 모르고 택시 타고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소 배필은 전골하고 목살은 찢어서 국밥하고. 가리봉동 압록강식당 소고기국밥이 널리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장사가 정말 잘 되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였다. 배고픈 동포들에게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한 그릇의 국밥이 배를 든든하게 했기 때문이다. 매월 중국돈 2만원(한국돈 400만원)씩을 중국에 보냈다. 몇 달 동안 중국돈 15만원을 보내니 빚고 갚고 또 아들 집까지 한 채 사놓았다. 소고기국밥으로 일어난 것이다. 곧 이어 주변 모든 식당들이 소고기국밥을 써 붙였다.

 
최정순도 사실 소고기국밥을 만드는 방법을 몰랐었다. 냉면하고 요리는 해봤지만 소고기국밥은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훈춘 은행초대소에 나닐 때 옆집 아줌마가 역전 근처에서 소고기국밥을 팔았는데 그렇게 장사가 잘 됐었다. 그래서 퇴근하면 들려서 먹어보곤 했다. 가리봉에서 소고기국밥을 끓이니 딱 그 맛이 나왔다. 훈춘 고향 사람들이 와서는 훈춘식당으로 쓰라고 했다. 간판은 그대로 압록강식당이지만, 유리창에 훈춘식당이라고 적었고 또 세무서에도 훈춘식당으로 등록했다. 때로는 몽땅 훈춘 사람이 와서 4개 테이블이 1개 테이블로 될 때도 있었다.
훈춘(압록강)식당은 2006년부터 계속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식당을 시작하고 1~2년이 지나면서 브로커를 통해서가 아니라 방문취업(H2) 비자가 생기면서 추첨으로 고향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훈춘(압록강)식당은 훈춘 고향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어갔다. 지금은 다른 훈춘식당도 생겼는데, 그 당시는 오다가다 고향의 식당이라고 해서 한번 들리기도 했다.
 
최정순이 식당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리봉동에서는 칼부림이 자주 일어나곤 했다. 당시에는 한국사람들이 중국사람을 깔보던 때였다. 식당에 들어 올 때는 괜찮았는데 술 두어 잔 하면 최정순을 중국사람이라고 깔보고 십팔년등 욕설을 했다. 식사를 하다가 싸움도 벌어지곤 했다. 식당 벽에 잔득 피가 묻기도 했다. 늘 소란스러웠다. 무서울 정도였다. 최정순도 여러 번 경찰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중문화학당 가리봉텔러팀이 최정순씨의 생애스토리를 담은 가리봉사람 이야기 포스터를 전달해주는 장면
 
지금은 가리봉이 완전히 변했다. 거리도 깨끗해졌지만, 싸움도 없어졌고 정말 좋아졌다. 지금은 살만한 동네가 되었다. 최정순은 하루 종일 일 년 열두 달 쉼도 없이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가리봉 조선족상우회 활동이나 그 외 봉사 활동도 거의 하지 못했다. 다만, 요식협회에 나가 1년에 한 번씩 선거하고 회의하고, 또 여의도 광장에 나가 데모도 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요식협회 또는 외식협회에서 세금신청과 교육도 시켜주고 있다. 사업자등록증도 협회에서 보관해주고 있다. 매월 회비로 2만원을 내고 있다. 한국은 장사하기 편한 편이다. 중국은 환경부나 공상부나 다 와서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검사했다.
 
최정순은 요즈음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하고 있다. 한국 환율이 떨어지니 사람은 많은데 일하는 사람의 돈이 적고 또 손님도 적어졌다. 단골 외에는 거의 손님이 끊어졌다. 최근 가리봉동에는 한족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이들 한족들은 3개월 방문비자로 들어오고 있다. 방문비자로는 취업을 할 수 없는데, 과거 중국동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대부분 불법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 남구로역 새벽 인력시장의 상당수가 한족들이다. 이들은 단기간 돈을 벌기 위해 왔기 때문에, 20만원의 저렴한 숙소에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거의 밥을 사먹지 않는다.
한족은 한 사람도 안 들어와요. 거리에서 몇 천 원짜리 사먹지 절대로 들어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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