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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편] ‘해란강초두부’ 최미애 이야기 ⓶ 북한 장사와 러시아 장사, 그리고 홍콩까지

중국의 개혁개방 시기를 맞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 기자 | 2019.03.22. 11:03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인터뷰 하는 모습


<
본문은 2018년 가리봉동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서울시, 구로구 지원)에 참가한 한중문화학당 가리봉텔러팀 임영상(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림학(한국외대 박사과정)이 구술인터뷰를 하고 정리 작성하여, 가리봉사람이야기(소책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국 사회 전체를 변화시켰는데, 그 변화의 선두에 선 민족이 동북의 조선족이 아닌가 한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연변 사람들은 중국의 대도시로도 진출했지만, 북한과 러시아 장사에 앞장 선 것은 연변 사람들이었다. 연변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왕래하려면 국경에서 여권에 도장만 찍으면 되었다.

 

버스 이동이 가능한 연변과 연해주의 도시들


1989
최미애는 어린 은희를 맡겨 놓고 북한 장사를 시작했다. 1년에 6개월 정도 북한에 체류했다. 남편은 직장이 있기 때문에 혼자 나섰다. 북한에서는 낙지(한국에서는 오징어) 등 주로 해산물을 가져왔다. 변경지역인 청진은 가지 못했지만, 무산과 신의주 등 북한의 여러 지역을 다녔다. 주로 양강도 쪽을 많이 다녔다. 북한 장사는 잘 되었다. 남편에게 택시도 사주었다.

 

최미애 씨 그때 러시아 바람이 불었다. 1994년 러시아에도 혼자 갔다. 딸 은희가 7살 때였다. 러시아 우수리스크로 갔다. 처음에는 옷장사를 했다. 그런데 옷장사는 남자들이 같이 해야 되어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는 외삼촌 아주머니가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러시아 사람들이 가져온 해삼을 중국에 파는 일을 했다. 흑룡강성 오상으로 보냈다. 러시아어를 잘 하는 북한 사람을 통역으로 썼다. 해삼의 품질이 좋았고 장사가 잘 되었다. 그런데 겨울에 물이 얼어 잠깐 집에 갔다가 물이 풀면 다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7개월 만에 집에 오니 어머니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러시아 장사를 포기하고 용정에서 짠지 장사를 1년 했다. 반찬가게도 괜찮게 되었다. 어머니께 조그마한 집 하나를 사주었다. 다시 북한 장사에 나섰다. 중국에서 북한에 들어갈 때는 북한에서는 없었던 살충제를 갔고 갔다. 몇 톤씩을 싣고 갔다. 당시 인민페 3만원어치면 상당히 큰 규모였다. 북한에서 들어올 때는 해산물 3kg만 가능했었다. 그러나 미애가 속한 팀은 몇 톤씩 갖고 들어왔다. 북한에 필요한 살충제, 비료 등을 가져갔기 때문에 중국에 들어올 때 물건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도 어느 순간부터 장사가 잘 안되었다. 그때 모두 나진으로 갔는데,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역사적인 해에 미애 씨는 홍콩에 갔다. 5개월 정도 있었다. 홍콩 장사도 괜찮았다. 그때 북한 장사를 같이 했던 친구가 한국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한국 가면 힘들다고 하던데...



 

최미애의 장사루트(북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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