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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편] ‘해란강초두부’ 최미애 이야기 ⓸ 해란강 초두부

동포세계신문 편집국 기자 | 2019.03.22. 12:11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본문은 2018년 가리봉동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서울시, 구로구 지원)에 참가한 한중문화학당 가리봉텔러팀 임영상(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림학(한국외대 박사과정)이 구술인터뷰를 하고 정리 작성하여, 가리봉사람이야기(소책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한국에 온지 10, 처음에는 말뜻을 몰라 알아들을 수가 없어 198,000원 비행기표 돈만 있으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비자를 받기 위해 빌린 인민페 5만원 빚을 갚아야 했다. 식당일은 말할 것도 없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때밀이 일까지 해서 돈을 벌었다. 이제 딸 은희를 대학에 들여보내고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 마침 중국동포의 고향이라는 가리봉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음식장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최미애 씨 최미애는 과거 연길 서시장에서 초두부를 만들어 팔 때부터 맘속으로 초두부 식당을 하고 싶었었다. 그런데 권리금이 1,000만원이었다. 게다가 소문이 돌고 있는 가리봉 재개발사업이 추진된다면, 권리금이 뭐고 그냥 쫓겨날 판이었다. 권리금을 200만원으로 깎았다. 만약 장사가 되어 않아 무슨 일이 생기면, 사우나 가서 또 돈 벌면 되겠지 하고 생각을 한 것이다. 마침 목욕탕 영업이 24시간으로 바뀌었는데, 목욕탕 일은 자신이 있었다. 사우나에서는 가끔 일당을 불렀고 또 마사지를 잘해서 명절 때는 40~50만원 받기도 했다. 그래서 밑지면 또 목욕탕에 가서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제가 원래 초두부를 잘했어요.” ‘미화초두부식당을 인수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초두부 식당을 한국, 그것도 중국동포의 고향인 가리봉동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식당 간판을 무엇으로 할까? 어릴 때 집 앞의 해란강이 생각났다. 그때는 세탁기도 없어서 빨래를 해란강에서 했다. 빨래도 하고 여름에는 목욕도 했던 기억이 너무 좋아 해란강초두부로 정했다. 식당 내부와 주방을 싹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했다.

해란강초두부 식당을 열자마자 참으로 신기했다. 한 번 먹고 간 사람이 또 한 사람 데려오고 점점 모이는 느낌이었다. 원래는 식당이 아래층의 절반 정도로 자리가 6상이 전부였다. 손님들이 너무 자리가 없다고 해서 옆의 호프집을 3000만원을 들여 확장했다. 이웃 식당이 참으로 미안할 정도였다. 해란강초두부 집에만 사람들이 늘 붐볐다. 또 단체 손님들이 많이 와 좁다고 해서 작년에는 2층까지 올렸다. 2층은 50명의 단체손님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가리봉에서 초두부음식하면, 해란강초두부 식당이 되었다.

 

해란강초두부 식당은 연변의 충청도 마을 정암촌 사람들의 만남의 광장, 역전(정거장)이 되었다. 정암촌에 들어가려면 연변대를 졸업한 딸 김은희 거쳐야 하는 량수진 사람들도 많이 온다. 또한 용정 시내를 흐르는 해란강인 만큼, 용정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 매학기 주말현장답사로 가리봉을 찾고 있는 한국외대 학생들도 단체로 와서 초두부뿐만 아니라 꿔바로(탕수육), 밴새(만두) 등 다양한 연변음식을 체험하고 있다.

 

2008년 딸 은희가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남편도 한국에 들어왔다. 결국 10년 만에 온 가족이 한국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최미애 사장의 다른 형제들도 이제 모두 한국에 살고 있다. 최미애 사장 가족들도 귀환동포가 된 셈이다. 은희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겠다고 하는데, 신랑이 경희대 의과대 안과 석사로 오게 되어 딸도 경희대 대학원 호텔경영학과 석사과정으로 와서 둘이 같이 공부하게 되었다.

 



 

변화하고 있는 가리봉, 한국사람들과 어울리며 잘 살고 싶은데

 

해란강초두부 식당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가리봉에서 꿈을 이룬 최미애 사장은 이제 가리봉 사람이 되었다. 아직 국적은 중국이다. 재외동포(F4) 비자로 사는데 지장이 없다. 언니 가족들도 다 한국에 왔으니 연변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주변에서 세금도 많이 내고 하니 귀화하라고 한다. 아직까지는 귀화할 생각이 없다. 귀화 조건은 충분한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고향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한번 가보고 싶더라고요.”

 

가리봉 사람으로 최미애 사장은 가리봉 조선족모임에도 참여했다. 20166월 가리봉 우마길 조선족상우회가 발족했을 때, 아침마다 한집에 한 사람씩 나와서 우마길을 청소했다. 2016911일 가리봉시장 우마길에서 개최된 주민과 중국동포가 함께 어울리는 가리봉동 어울림 한마당 축제에 후원하기도 했다. 가리봉 조선족상우회와 구로문화재단이 공동 개최한 이 축제는 가리봉동 지역 개발문제로 보낸 10여 년의 세월을 다시 소통과 화합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얼마 있지 않아 조선족상우회 활동이 중단되었다.

 

최미애 사장은 지난 10년의 가리봉동 생활을 되돌아본다. 처음에는 참으로 무서웠다. 호프집에서 일했는데, 정말 저녁 되면 피바다였다. 지금은 그런 게 많이 없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가리봉동 도시재생사업 덕택에 거리도 깨끗해졌다. 식당 일을 하니 늘 가게가 걱정이다. 그래도 이제는 생활의 여유를 찾았으니 1년에 한번은 여행도 할 생각이다. 작년에는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리고 최미애 사장은 중국동포와 한국 사람이 융합을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사람과 중국사람 왜 융합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매달 수요일 마다 등산모임이 있는데, 말도 통하고 문화도 통하는데, 왜 벽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사람이 조직한 산악회인데 중국 동포들과 이상하게 벽이 있어요.” 밥 먹을 때면 한국사람이랑 중국사람 나누어 먹는다. 한국과 사람과 친구도 산악회에 갔는데, “말 처음하자 마자 강 건너서 왔데라는 말을 듣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 그 친구는 한국 국적이고 아이도 한국에서 낳았는데도 이렇게 융합을 못하면 어떻게 여기서 살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최미애 사장은 약 90분 정도 한중문화학당 연구팀과 대화를 나누면서, 처음에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또 힘들었던 한국생활에 목에 메이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장차 가리봉 행복마루에서 한중문화학당이 손님이 적을 오후2~4시 사이에 <생활명상>, <사진찍기> 등의 강의를 할 것이라고 했더니 가능하면 열심히 참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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