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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의 삶의 현장, 가리봉

한강의 기적 & 코리안드림 이룬 이주 노동자들의 마을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기자 | 2019.03.22. 14:27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2009년도 가리봉동 전경, 구로공단이 한창 디지털단지로 변화해가며 재개발 늪에 빠진 가리봉동이 고층 건물에 둘러쌓여 있어 대비를 보이고 있다.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필자 김용필(동포세계신문 대표겸 편집장)


가리봉 변화와 동포사회의 정착
 
1975년부터 가리봉에 거주해 온 박만득 씨는 “70, 80년대 가리봉시장 길은 사람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젊은 노동자 인파가 붐볐고, 외출이 허용된 수요일 저녁과 주말 저녁에는 노래방, 디스코텍, 영화관에 줄지어 설 정도로 인사인해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가리봉동 우마길의 당시 풍경이다. ‘혜성극장디스코텍 마부등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당시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도 영업중인 목화밭 노래로 유명한 하사와 병장 리더 이동근 씨가 운영하고 있는 행복노래방은 청년들의 통기타 교습소였고, 야학활동도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80년대파노라마쇼핑센터는 화재로 인해 지금은 빈 공터와 함께 불길에 그을린 체 일부 건물만 남아있지만 가리봉동 노동자들의 소비시장이 얼마나 왕성했었는지 말해준다.
가리봉동에서 1983년부터 지금까지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송순섭(58) 사장은지금은 중국동포들이 주 고객이지만 80년대는 10, 20대 젊은층들이 이발소를 많이 찾았다고 말한다.
그 당시 가리봉동은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많았던 시절, 하지만 80년대 후반 구로동단의 공장들이 시화공단으로 이전하면서 가리봉동에 거주하던 노동자들도 그 수가 줄어들고, 90년대 마리오아울렛에서 광명시 철산동으로 이어지는 <수출의 다리> 확장공사가 2년여간 진행되면서 광명에서 가리봉동으로 오던 사람 수도 크게 줄어들어 이발소를 찾는 고객도 잠시 주춤했죠. 92년쯤 되니 이발소에 중국동포 고객들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한 두명 정도였는데 서서히 늘어나더니 2002년경 되어서는 부쩍 많이 늘었어요.”
가리봉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리봉동은 88올림픽을 전후해 급격히 슬럼화 되어 갔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공장노동자들도 떠나가고 그 빈자리에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무일푼의 가출청소년과 외국인노동자들, 그리고 중국에서 온 조선족동포들이다.
2000년 초 필자가 처음 접한 가리봉 거리는 활기를 잃어버린 지 꽤 오래 된 지역으로 보여졌다. 서울에 이런 곳이 다 있냐? 할 정도로 어둡고 삭막하기만 한 마을이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은 아니었다.
가리봉 쪽방촌을 메운 조선족이라 불리는 낯선 사람들, 그 당시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골목길 안 허름한 양꼬치점, 빈 드럼통에 숯불을 피워 놓고 자전거바퀴살에 양고기를 꿰어 구워먹던 모습이 생각난다. 50도에 가까운 독한 술과 코를 찌를 듯한 향내 나는 음식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노래만큼은 한국 가수 뺨칠 정도로 한국대중가요, 트롯트를 멋드러지게 불러재낀다. 평일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가도 주말이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모를 정도로 왁짝지껄해지기 시작한 가리봉시장 밤거리였다.

남구로역 새벽인력시장 전경 @ 2018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새로 이주해 온 4, 50대의 조선족 노동자들은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아니었다. 남자들은 대개 일용직으로 새벽인력 시장을 거쳐 건설현장일을 나가고 , 여자들은 지하철로 강남을 오가며 식당일을 많이 한다. 때로는 한동안 외지에서 일을 마치고 다음 일거리를 찾을 때까지 가리봉 쪽방에 와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언제나 보아도 얼굴엔 항상 근심이 깔려 있다. 불법체류자라는 불안감 때문에 외부인을 경계하고 신분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눈치 빠른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서울말씨를 배워서 한국인처럼 보여지기를 원한다. 가리봉동에 조선족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한국사회에서 조선족 하면 불법체류자, 가리봉동은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인식되어져 있었다.
필자가 조선족동포에 대해서 한국사회에 바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포신문 기자로 활동할 때인 20018월 중앙일보는 국내 일간지로는 최초로서울 속 옌벤 중국동포타운이라는 제목으로 4회 연속 기획보도를 하였다. 이로 인해 가리봉동에 사는 조선족 노동자들의 삶이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던 것같다. 한국인과 한 핏줄을 타고 난 동포이지만 동포로 인정받지 못하고 불법체류자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조선족 노동자들이 겪는 설움과 한국에 오기 위해 큰 빚을 지고 왔음에도 돈도 못 벌고 강제추방을 당한 이야기, 서울조선족교회의 조선족 자녀 초청 프로그램으로 적게는 3년 길게는 10년만에 자녀와 눈물의 상봉을 하는 장면 등이 사진으로도 게재되었다.


 

분명 2000년대 들어서 가리봉동은 중국동포의 마을이 되어갔다. 그러나 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리봉을 찾는 낯선 한국인을 피하고 심지어 한국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확 바뀌게 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정부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한시적으로 합법화 조치를 취한 후부터이다. 가리봉동에서 숨어지내던 중국동포들은 마음놓고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바람에 가리봉동에는 중국식당이 많이 생기고 노래방도 5, 6개에서 26개로 몇배 늘어났다. 먹고 마시고 어울려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중국동포들의 강한 소비문화 덕분에 가리봉동은 잃어버렸던 소비시장을 되찾고 다시 활기 찬 거리가 되었다. 지금도 가리봉시장 상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당시가 가장 좋은 호황기였다고들 한다.
휴일이나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중국동포 노동자들로 연변거리로 변한 우마길은 꽉 찼고 네온싸인이 꺼지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가리봉동은 중국동포들에겐 만남의 장소였고, 일을 마치고 귀가길에 중국에 있는 아이들과 화상전화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전화방, 국제전화카드, 중국 고향식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직업소개소가 많아 일자리를 찾기 수월했고 외국인에 대한 정부 정책을 수시로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만 되면, 갈곳 없는 중국동포들은 가리봉동에서 고향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때면 한국의 언론방송도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중국동포들의 사연을 전하고자 가리봉동을 찾았다. 가리봉동은 중국동포들에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삶의 현장으로 가리봉의 가치



  구로구는 2005년 가리봉동 재개발 사업 공청회를 열었다. 디지털산업단지 배후도시로 청담동으로 개명하고 최첨단 상업복합단지로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가리봉동은 코리아드림의 발상지가 아닐까. 2000년대 가리봉동에 사는 중국동포들의 이야기가 드라마, 문학작품, 영화로 많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20023172부작으로 방영된 MBC 드리마 가리봉엘레지는 코리아드림을 좇아 고국 땅에 발을 디딘 중국동포들이 가리봉에 모여 사는 모습을 방송 최초로 그렸고, 박찬순의가리봉 양꼬치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이 되었다.
다소 끔직한 누와르 작품이긴 하지만 2010년 나홍진 감독의 영화 황해2017년 강윤성 감독의범죄도시등은 중국동포들의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와서 정착해 사는 동포들의 생활 단면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가리봉동은 중국동포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외국인 노동자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방송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인들에게 낯설 수 밖에 없는 이국적인 모습으로 좋은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대체로 많이 부각되긴 하였지만, 70, 80년대 서울의 달을 보며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온 꽃다운 나이의 노동자들의 가리봉동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코리안드림을 안고 국경을 넘어 들어온 중국동포 노동자들의 가리봉동 이야기는 일맥상통하는 요소가 있다고 본다.
가리봉동은 이것을 애써 외면하고 모두 지어버리고자 하였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이라는 기간 가리봉동은 노동자들의 마을이라는 기억과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고 구로공단의 디지털산업단지화에 발맞춰 첨단동이라는 새 이름으로 탈바꿈한다는 재개발 늪에 빠져있었다. 필자는 이 때를 가리봉동의잃어버린 10이라 부른다.
이제부터라도 가리봉동을 재발견하고 그 가치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가리봉동에서 찾고자 한 중국동포타운가치

2004년 가리봉동, 화합과 공존의 거리 선포식 행사 모습
 
필자는 2003년부터 가리봉동 중국동포타운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가리봉동의 가치를 찾고자 하였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70, 80년대 가리봉동에 온 노동자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공장에서 일한 젊은 층이라면, 1990년대 이후 노동자들은 중국 동북 3, 곧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에서 온 중국동포들로 주로 한국인들 하지 않은 3D 업종에서 일을 하였다.
70, 80년대의 가리봉동과 2000년대의 가리봉동은 범위가 달라지긴 했지만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 공존공생의 생활공간이었다. 중국동포들은 한국사회와 체제와 이념적으로 동떨어져 있던 중국적 사고와 문화요소를 안고 들어왔다. 심지어 중국동포들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사람들과 잦은 교류를 해본 경험도 있다.
가리봉동은 동북아의 축소판, 한중교류와 남북통일의 실험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중국동포와 함께 생활하는 가리봉 지역주민들이 중국동포를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매우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다.
가리봉동을 차이나타운이라 하지 않고 중국동포타운이라고 이름을 붙인 데에는 중국동포들의 정체성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동포들은 한국에 와서 정체성 고민을 많이 한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으로 중국인 한족과 차별화 되었지만, 한국에 와서는 중국인으로 불려지게 된다. 고국에 왔지만 진정 동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 중국동포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지역으로 가리봉동은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곳이었다.
가리봉동에 정착한 중국동포를 이해하고 함께 하는데 국적은 달라도 문화적 동질성 회복은 필요한 과제였다. 가리봉동 지역민과 상인들뿐 아니라 가리봉 거주 중국동포와 석박사급 조선족유학생들이 다같이 합심하여 가리봉동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 주자는 취지에서 우리 고유의 명절을 맞아 중국동포와 지역민이 함께 하는 설날노래자랑, 추석맞이 한중노래자랑을 2004, 2005년 연속 개최하고, 또한 가리봉동을 화합과 공존의 중국동포타운의 거리로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200494일엔 가리봉동 우마길을 화합과 공존의 거리로 선포하는 행사도 가졌다.
이 활동은 지속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 당시를 반추해 보면 노동자로 고된 생활을 해온 중국동포들에게 있어 가리봉동은 특별한 곳임을 각인시켜주는 효과가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론
 

가리봉동을 명소로 만든다는 취지로 한중문화학당 가리봉텔러팀은 2017년, 2018년 2년간 가리봉동 스토리뱅크 구축사업과 문화지도 제작 사업을 진행하고, 수시로 외부인을 조직해 가리봉동 문화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리봉동 주민으로서 도시재생사업에 앞장 서고 있는 박만득 씨는 이제 가리봉동은 과거의 15년 전, 20년 전의 치안불안으로 가고 싶고 떠나고 싶던 도시의 상처는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내외국인 모두가 상생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가리봉동 외에도 영등포구 대림동을 비롯해, 광진구 자양동, 안산 원곡동, 시흥시 정왕동 등 중국동포 밀집거주지역이 여러 곳 있다. 그런 중에서도 가리봉동이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가 변화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초기 이주민들의 애환과 흔적이 배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2000년 중반부터 석박사급 연구생과 학자들이 가리봉동을 많이 탐방 오고 이야기를 담아낸다. 논문도 여러 편 발표되었다. 앞으로도 가리봉동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 과거 산업화 시대를 거쳐 초국가적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의 변화상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이주노동자들의 숨결을 읽을 수 있는 마을로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보여주게 되길 바란다.

서울시에서 발간한 가리봉 이야기 책 표지

<본문은 서울시에서 발간한 '다시 찾은 가리봉스타일' 책에 게재된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대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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