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 중국전통문화예술단을 만들겠습니다”

최애순(崔愛順) 국제문화예술진흥회  회장

중국국무원교협가무단 한국서울화성(華星)예술단
상무부단장

 

[인터뷰=김용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 자생적인 중국동포예술단이 많아졌다. 그만큼 중국동포 단체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예술단들의 춤과 노래이다. 재한 중국인(華僑華人) 행사 때에도 중국동포, 즉 조선족들로 구성된 예술단 활약이 크다. 특히 조선족 예술인들의 역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국제문화예술진흥회 최애순(崔愛順, 50) 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중국 흑룡강성 오상시에서 태어나 밀산조중 교사로 17년간 활동해 온 최 회장은 4세 때부터 노래, 무용, 악기 연주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하였다. 학생 신분이면서도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하고 문화공연 때마다 무용 창작도 하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2008년 한국에 와서 중국어 강사로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2013KBS 창사 40주년 동포노래자랑대회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술단 활동을 재개하게 된 최 회장은 2015년 중국 국무원이 한국에 설립한 한국서울화성(華星)예술단 상무부단장으로 중국재한교민협회가 주최하는 크고 작은 중국전통문화공연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연출해 오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국제문화예술진흥회는 동포세계신문사가 위치해 있는 남구로역과 가까운 곳에 연습실을 두고 있다. 남구로역 2번 출구로 나와 500여미터 떨어져 있는 건물 지하 연습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2, 30여명의 단원들이 모여 열심히 중국 소수민족의 전통무용을 연습한다.


지난 39() 오전 3.8절 세계여성의 날 기념 자체 친목모임 자리, 단원들은 그동안 단원들을 헌신적으로 지도해 준 최애순 회장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표현해주어 눈시울을 적셨다.

국제문화예술진흥회는 어떻게 하여 만들어졌고, 최애순 회장의 살아온 이야기와 활동을 들어보기 위해 기자는 지난 320일 별도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중국에서 생활

 

중국 흑룡강성 오상시에서 태어난 최애순 회장의 아버지는 다년간 교사를 역임하셨고 어머니는 조선족으로서 중국중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어머니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중국노래를 잘 불렀고 무용이며, 피아노며 예술 방면에 천재성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4살 때부터 문화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대에 올라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공부도 특출나게 잘해 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수석이었다. 하지만 골결핵이라는 질병 때문에 바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도 최애순은 소학교 교사로 활동을 했고, 중단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1989년 기숙학교 밀산직업고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밀산으로 간 것은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기에 친구들과 너무 차이가 나서 그랬던 거죠. 밀산직업고중 유사반(유치원 교사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반)에 입학했습니다. 예술인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되면 교사라도 되어야겠다 생각했죠.”

밀산에서도 최애순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연변가무단 소속 교사들이 학교에 파견 나와 예능교육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1학년 때 리록순 선생님으로부터 무용을, 이영자 선생님으로부터 성악을 지도받았는데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죠. 밀산시 교육국에서 교육비를 대주어 연변사범학교에 가서 무용전문 개인교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때 밀산시교육국 내에서도 밀산 출신이 아닌 저를 왜 지원해주느냐며 말이 있었던 걸로 알아요. 고민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교육국이 지원을 결정한 것입니다.”

즉 최애순은 밀산직업고중 재학생이면서 연변사범학교에서 특별히 예술 지도를 받게 되었고, 2학년때부터 후배들을 지도하는 교사로 활동하였다. 밀산직업학교가 밀산조중과 합병하게 된 1990년초 밀산조중 생물 교사로 발탁되어 가르치면서 특별활동으로 노래, 무용 문화예술 방면 지도교사로 활동하고, 밀산시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행사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는 할빈사범음악학원(4년제 대학) 음악교육계에 입학하였다.

 

2008년 한국에 오다

 

최애순은 2003년 밀산조중 교사활동을 조기은퇴하고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2008년 한국에 오게 되었다. 예술적 재능은 잠재하고 있었다. 2013KBS 창사 40주년 동포노래자랑에 참가해 동백아가씨를 불러 대상을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중국동포예술단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중국동포 예술인을 양성해 보자는 뜻에서 20137월에 국제문화예술진흥회를 설립하고 예술단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구로구민회관에서 3.8절 세계여성의날 노래자랑 대회 등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공연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3월 9일 3.8절 모임에서 허광옥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 수석부회장(동포세계신문 발행인)과 함께
3월 9일 3.8절 모임에서 허광옥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 수석부회장(동포세계신문 발행인)과 함께

 
▷ 인터뷰 일문일답

기자: 예술단 단원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무용을 배우겠다고 오는 50, 60대 중국동포 여성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식당 등 일을 하면서 주말에 모여 늦깍기로 무용을 배우는 사람들이다. 무용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사람들을 기초부터 지도해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줍니다.

현재 예술단 회원은 20명 정도 돼요. 예술단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40대 젊은 층도 회원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대부분 50, 60대 여성들입니다. 이처럼 늦은 나이에 무용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분들이 있지만 무용은 특성상 신체 움직임이 따라주어야 하기 때문에 요구하는 동작을 연출해 내기 어렵다 판단되면 스스로 포기들 하시는 안타까운 일도 있죠. 그러나 5년 정도 된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수준급이 되고 잘들 하십니다.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한 덕분이라 생각해요.”

 

기자: 예술단 운영은 어떻게 하나?

“사무실 운영비는 제가 부담을 하고 있고 단원들이 내는 회비로 일부 충당하고 있어요. 단원들이 자비를 들여 무용복을 구입하거나 비용을 아끼려고 원단을 사서 제가 직접 디자인 하고 재단하고 수선하여 무용복을 제작하고 소품도 직접 만들어 쓸 때가 있는데, (사진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것, 북처럼 보이죠, 북을 살 돈이 없어서 페인트통을 이용해 만든 북이죠.”

 

기자: 한국서울화성(華星)예술단 상무부단장 직함도 있던데, 이곳은 어떤 예술단인가?

“중국 국무원은 전 세계 50개 국가에 화교화인 예술인들을 주축으로 화성(華星)예술단을 설립했습니다. 중국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며 지역사회와 민간적인 교류에 도움을 주고자 설립한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20155월 한국서울화성예술단이 설립되었죠. 국무원은 춘절에 해외 각국 교민을 위한 위문공연을 합니다. 우리 화성예술단도 참여해 함께 하고 있어요.”

 

기자: 중국정부로부터 받는 지원은 없나?

재정적 지원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공연을 위해 필요한 의상이나 소품을 가끔 지원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기자: 지원 없이 예술단 운영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저는 한국에 와서 처음엔 중국어강사, 통/번역 등 일을 해주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사로 은퇴했기 때문에 연금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술단을 이끌어가기에 역부족이예요. 지금은 개인지도로 어느 정도 만회를 하지만 초창기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때로는 출연료를 받는 행사를 하게 되면 운영비로 보태거나 회식도 하고 수고하시는 회원님들께 약간의 위로금을 주거나 필요한 소품을 사거나 합니다.

 

기자: 많은 공연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해서 참여했나?

내가 틈틈이 인터넷 검색을 하여 지방공연을 파악하고 출연제안서를 만들어 공모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 소수민족 무용을 창작해 지도해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동포예술단이지만 중국 소수민족의 특색있는 무용들을 연출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술단원들이 거의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평일에는 시간 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탈북자예술인으로 구성된 북한예술단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북한예술단은 중국동포 예술단과 달리 정부지원을 받을 기회도 많은 것같습니다. 다른 일 하지 않고 공연활동에만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중국동포 예술단은 직접 정부 지원 공모사업에 참여하는데 제약이 따릅니다.”

 

기자: 그동안 기억에 남는 공연은?

중국 국무원에서 주최하는 문화공연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원들에게도 큰 기쁨입니다. 그 외 2017년에는 구로구민회관에서 다문화페스티벌 공연을 개최하였고 부산 동구청에서 개최한 중국인의 날 행사 때도 부산차이나타운에서 열린 공연에 참가했습니다. 올해에는 지난 해에 이어 426일 고양국제꽃박람회 행사에도 참여해 공연할 예정입니다.


최애순 회장에게는 가슴 아팠던 일이 있다. 예술단 설립 당시 중국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폐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때에 찾아뵙지 못했다. 단체를 막 시작한 때라 성공을 하면 찾아뵙겠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갔지만 마지막 임종을 끝내 보지 못했다. 그래서 힘들 때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한다.

지금도 생각해요. 반드시 훌륭한 예술단을 만들어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아버지께, 그것을 바라실 거라고...”

4살 때부터 무대에 서왔던 최애순, 이젠 지천명(知天命) 나이가 되어 한국에서 꿈을 꾸는 성숙한 예술인이 되었다. 최 회장은 "머지않아 한국에서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 중국전통문화예술단을 만들겠다"고 의지를 보이며 인터뷰를 마쳤다.

 

저작권자 © EKW이코리아월드(동포세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