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국내 최초 '베트남 전통 쌀국수' 식당업으로 성공한 이야기


베트남 고향사람들을 위해 원곡동에 최초로 연
베트남 전통 쌀국수 고향식당

지금은 베트남 고향의 맛을 한국사람들에게 맛보게 한다.

서울 신사동 2호점, 안산 롯데백화점 3호점 열어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안산 원곡동편


 "한국 속 아시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 음식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음식점 한 곳 한 곳을 들러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국타향으로 홀로 와서 코리안드림을 이룬 이주민들의 눈물 나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2002년 안산 원곡동에서 처음 베트남 고향식당을 연 이미현 씨는 1994년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한국인과 인연을 맺어 결혼하고 딸 셋을 낳고 2016년 서울 강남 신사동에 베트남 식당 2호점과 2018년 안산 중앙역 롯데백화점 건물 내에 3호점을 오픈해 경영하고 있다. 코리아드림을 이룬 대표적인 베트남 출신 원곡동 사람이라 생각된다.

이미현 씨의 한국 이주와 정착 이야기를 듣기 위해 원곡동 베트남 고향식당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이미현 씨의 원 베트남 이름은 레 호와이뚜( Hoái Thu)이다. 1996년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한국인을 만나 결혼하면서 남편이 '이미현'이라고 한국식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베트남 이름의 성 도 한자로 로 표기한다고향은 베트남 북쪽 하노이시와 가까운 지방 딴호와(Thanh Hóa) 시, 대학이 많은 교육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이씨는 형제 16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교사,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형제들이 대학을 나와 직장생활을 하였지만 월급이 낮아 생활이 어려운 때여서 아버지의 반대로 이씨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 공부해봐야 도움될 것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막내에겐 대학진학보다 일찌감치 돈 버는 일을 찾아 나서기를 바랬던 것이다.

마침 베트남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다섯 번째 언니로부터 한국에서 산업연수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나이 21, 1994년도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 생활한 곳은 경기도 김포시 작은 공장이었다. 말도 안통하고 베트남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초창기 월급 150 달라를 받고 일했지만 10개월 후 공장이 폐업을 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오게 된 곳이 안산 원곡동과 가까운 반월공단 염색공장이었다. 이곳에서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특별히 배려를 많이 해주는 한국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한국에 정착해 살아오게 되었다.

 

1998년 국제결혼 수속을 밟을 때 일이다. 남편과 함께 베트남 고향집을 방문했다. 아버지는 딸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혼승인장에 도장을 안찍어주었다고 한다. 한국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한국에서 살려고 그러냐며 걱정하기도 했다. 한국인 남편은 큰 절을 올리며 걱정하지 마세요, 따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며 이씨의 부모님, 특히 완강하게 반대하는 장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어머니가 딸 하나 버린 셈 치자며 아버지를 겨우 설득해 결혼 승낙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약속을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를 맞게 되면서 남편은 함께 다닌 염색공장에서 그만둔 상태였고 건설현장을 돌며 목수일을 했지만 일감이 많지 않았다. 부부가 열심히 생활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활하기에 벅찼던 것이다. 이런 때 한국에 베트남 고향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베트남식당을 차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베트남 음식을 잘 하는 언니들이 도와주기로 나섰고 베트남 고향집에서 한국돈 2천만원까지 대주어 이씨 부부는 안산 원곡동 라성호텔에 8평 남짓한 베트남식당을 열게 되었다. 이때가 2002년도이다.


이미현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와 김희연, 강민혜 한국외대 학생들이 베트남고향식당 앞에서 이미현씨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미현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와 김희연, 강민혜 한국외대 학생들이 베트남고향식당 앞에서 이미현씨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미현 씨는 한국에서 최초로 베트남식당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식당 이름에 베트남 고향식당이라는 명칭도 붙였다. 한국에 온 베트남 사람들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기 위한 것이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보통 식당 이름에 사람이름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식으로 ○○네 식당이런 식일 것이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먼 타국 땅에 온 베트남 사람들 역시 고향을 무척 그리워한다. 이씨가 처음 문을 연 베트남 고향식당은 이것을 입증해주었다,

국내에 베트남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베트남식당이 지금은 여러 곳에 생겼다. 이들 베트남 식당 간판을 보면 베트남 고향식당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을 볼수 있다.

2002년 베트남 식당이 안산 원곡동에 오픈했다는 소식은 멀리까지 전해졌다.
정말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베트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어요. 줄을 지어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죠
 
이씨는 말한다. 2004년까지 2년간 라성호텔에서 식당을 경영하다가 규모를 확장해서 원곡동 다문화거리로 옮기고 2008년부터는 현재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식당 한 켠에는 베트남에서 들어온 식품도 진열해 놓고 팔았다.

2005년 경 원곡동에는 이미현 씨의 식당 외에도 베트남식당이 3곳이 더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원곡동에 베트남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원곡동은 중국사람(중국동포)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베트남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후 베트남 사람들이 줄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고려인)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베트남 사람이 줄어든 원인은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면서 베트남사람에게 한동안 고용허가제(E-9) 비자를 내주지 않은 탓도 있고 원곡동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와 함께 원곡동의 베트남 식당들은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이미현씨 식당만은 사정이 달랐다.

베트남에서 온 고향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이씨의 베트남식당은 점차 한국사람들한테 더 많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15
년 이후부터는 확실히 한국인 손님이 80%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베트남 사람 없어도 식당이 잘돼요.”
베트남쌀국수가 한국인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프랜차이즈 체인점들도 생겼다. 그러나 이들 체인점들은 베트남 쌀국수라고 하지만 실은 태국식 면을 사용하는 곳도 있고 육수도 전혀 다르다는 게 이미현 씨의 설명이다.

안산 원곡동 베트남고향식당 본점 전경
안산 원곡동 베트남고향식당 본점 전경


"우리는 베트남 면을 사용하고 육수도 베트남 스타일로 만들어요. 말 그대로 '베트남 전통 쌀국수 이죠, 먹어보면 달라요. "
 
베트남을 찾는 한국인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베트남 요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어떤 것이 진짜 베트남 전통 쌀국수 인지 한국사람들이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현지 요리를 즐기고자 베트남고향식당을 찾는 한국인들이 많아졌고, 이에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되면서 한국과 베트남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런 분위기에 배가 순풍을 만나 유유히 흘러가듯 이미현 씨는 2016년 서울 강남 신사동에 제2호점을 오픈하고 2018년엔 안산 중앙역 롯데백화점에 제3호점을 오픈했다. 베트남 고향에서 친언니들이 들어와 함께 해주어서 식당을 경영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 없었다고 이씨는 말한다.

 

이미현 씨가 식당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의 힘도 컸다. 베트남 현지인이 와서 운영하는 국내 최초 베트남식당이라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200511MBC 화제집중에 이미현 씨의 베트남전통쌀국수가 소개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도 많이 올려져 있어 절로 홍보가 되었다. 이를 보고 20151014tvN 수요미식회에 이어 16MBC 생방송 오늘저녁에 소개가 되었고 OBS경인방송에도 나왔다. 2016MBN 시티라이프 안산 다문화거리 소개코너에서 나오고 2018년에는 KBS ‘아침이 좋다프로에 소문난 맛집으로 소개되었다.

안산 원곡동 베트남고향식당 안은 호치민 사진과 함께 방송에 나온 사진들로 벽을 장식해 놓았다. 그리고 이미현씨가 식당경영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활동사진과 함께 임명장, 감사장이 액자에 담겨져 진열되어 있다.

 

이미현씨는 원곡동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다문화마을 원곡동에서 외국인주민 모임을 할 때마다 이씨는 빠지지 않고 참여해 발언권도 행사한다. 거리청소봉사활동, 범죄예방을 위한 자율방범대 활동, 원곡동 유치원 봉사활동, 외국인 봉사활동 등에도 참여한다. 이렇게 지역봉사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는, 원곡동이 대외적으로 범죄가 많고 무서운 동네로 소문나 있어서 이런 안좋은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5
년 방송에 저희 식당이 많이 나가요, 사람들이 어디냐고 많이 물어오는데 원곡동이라 하면 거기 무서워서 못가요 그러는 거예요, 많이 속상하죠. 실제는 무서운 곳이 아닌데.”

 

한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이씨는 한국말을 잘 못해서 겪는 어려움이 가장 컸다고 말한다. 한국생활 25년이 되었다. 인터뷰 할 때는 통역이 필요없이 한국말로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발음이 많다.

이미현 씨에게 자랑스러운 것은 딸 셋이다. 원곡동에서 태어나 줄곧 이곳에서 생활을 해왔다. 큰 딸은 현재 22살 대학 3학년(수학과)이고 둘째 딸은 21살로 베트남 호치민 인문사회대학으로 유학 가 베트남어를 공부하고 있다. 막내 딸은 15살로 현재 원곡중학교 2학년이다.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왕따를 당하고 놀림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종종 보도된다.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이유에서이다. 혹시 자녀를 키우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이씨에게 물었다.
애들이 염려 말라고 오히려 엄마인 나를 위로해주어요. 딸들이 아주 활동적이에요. 어떤 때는 너무 활동적이어서 걱정되기도 해요, 아이들은 엄마가 한국에 와서 고생 많이 했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저한테 더 잘 하려고 해요, 둘째 딸은 엄마나라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엄마말 베트남어를 배우고, 제가 고맙죠, 아이들 때문에 마음 고생한 적은 없던 것 같아요.”

 

이미현 씨의 고향 딴호와 시에서 온 베트남 사람들은 현재 약 1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고향사람들은 구정(설 명절) 때면 고향별로 큰 방을 빌려 연휴를 함께 보낸다고 한다.
지금은 구정 때 베트남 고향에 다녀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고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각 지역에서 큰 방을 임대해 고향사람들끼리 모여 3일 휴일동안 함께 지내요, 음식도 해먹고 술도 마시며 즐기고 잠도 함께 자고요
21살 때 한국에 홀로 왔지만 지금은 딸 셋 엄마가 되었고, 베트남 고향 형제들도 이미현 씨로 인해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가깝게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과 결혼을 반대했던 친정 아버지의 생각도 완전히 달라졌다.

지나온 한국생활을 이야기하는 중에 이미현 씨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하였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고생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엿쁜 딸들이 엄마의 고생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가족이 있어 고맙기 때문이다. 이젠 힘들지 않다. 고향사람들을 위해 시작한 베트남고향식당은 지금은 고향의 맛을 한국사람들에게 제대로 맛보게 해주는 명소가 되었다. 베트남 이주민 1세 이미현씨는 당당한 원곡동 사람이 되었다. 이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식당 앞에서 손을 하늘 높이 번쩍 들어올리고 파이팅을 외친다.

 

한중문화학당 기획보도팀

인터뷰: 임영상(한국외대 명예교수),
김용필(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
김희연(한국외대 3학년, 베트남어학과),
강민혜(한국외대 2학년, 경영학과),

정리: 김용필

 

<본문은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기획기사로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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