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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동 사람] 강희덕 원곡동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원곡공인중개사무소 대표)

‘꿈과 희망, 성공이 함께 하는’ 원곡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다

한중문화학당 기획보도팀 기자 | 2019.06.24. 12:34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내국인 주민 3천명, 외국인 주민 2만 5천명, 이는 안산시 원곡동 인구현황이다. 원곡동 주민자치위원회 강희덕 주민자치위원장은 원곡동이 나아갈 길은 다문화·상호문화로 서로 이해하고 관광사업으로 나아가는 길 밖에 없다면서 주민자치위원도 30%를 외국인 출신으로 구성하고, 지난해 꼬치축제를 확대해 올해 928일에는 꼬치+누들축제를 개최하고 걸어서 원곡동 세계음식 속으로라는 푸드-(음식점지도)도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속 아시아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을 이해하기 위해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특별취재팀은 강희덕 원곡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만나 원곡동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 위원장은 원곡동에서 태어나 55년간 살아온 본토박이이다. 2008년부터 원곡동 음식업협회, 부동산협회 임원으로 활동해왔다. 원곡동의 현황과 변화상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있으면서 주민자치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고향땅인 원곡동이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부단한 노력을 펼쳐오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원곡동 주민자치위원회 구성원 30%를 외국출신으로 구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원곡동 인구 구성으로 볼 때 외국 출신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이다. 2009년에는 다문화특구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런 지역적인 특징을 받아들이고 이주민과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하자는 취지에서 주민자치위원회 문호를 개방한 첫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마을축제도 원곡동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알리는데 초점을 두어 2018년 9월 15일에는 여러 나라의 꼬치구이를 한 데 모아 시식할 수 있도록 한 '글로벌 원곡동 꼬치축제'를 열어 호평을 받았고, 올해 9월엔 동남아시아 사람들도 면()을 즐겨먹는다는 점을 고려해 누들축제’도 함께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안산시 단원구 원곡로 53 번길에 위치한 강희덕 위원장의 원곡부동산중개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영상 교수는 강희덕 위원장이 주민자치위원으로 외국인출신 위원을 7명(30%)으로 위촉한 것을 의미있게 평가하고 다문화에서 상호문화도시로 나아가는 좋은 사례가 될거라고 말하였다.
 
<강희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1. 어린 시절 원곡동은 어떤 모습이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가 공장지대로 변화하고 반월공단이 조성되었다. 2학교 때부터는 이곳이 공업화된 공단지역으로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원곡동은 단층 구조 집을 많이 지어 공단 개발지역의 이주민들에게 제공해주어 집거지가 되었다.
그 당시 내국인 노동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원곡동으로 이주한 부모세대들은 월세를 받아 아이들을 가르쳤다. 우리 집도 방 한 칸은 우리가 살고, 나머지 방은 세를 주었다. 그때부터 원곡동은 주민과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 성공이 함께 하는 집거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 원곡동에 외국인노동자들이 들어와 변화되기 시작한 때는?

원곡동은 1986년부터 단층가옥들이 4층 다가구주택으로 재개발되어 1988년 준공되었다. 공단의 배후지로 공단 노동자,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지금의 원곡동이 된 것이다. 이 당시 나는 20대 대학생 때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경 중국동포들이 원곡동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된다. 중국에서 교사질 했어요’, ‘공무원질 했어요라며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특히 연변지역에서 고학력의 중국동포들이 들어와 건설현장에서 일을 주로 하였다. ‘여기서 버는 돈이 중국에서 버는 돈보다 10, 100배 많다는 이야기도 듣곤 했다.
 
3. 198830년전 원곡동 거리는 어떠했나?
 
그때는 전국에서 온 내국인 노동자들이 아주 많았다. 탄광일을 하다 온 사람들도 있고, 원곡동 거리에는 돼지갈비집 등 한국식당이 대부분이었다. 노동자들이 즐겨찾는 까페, 노래방도 많아졌다.
 
(강희덕 위원장은 1994년 결혼 후 분가해 고잔동에서 살다가 2008년 원곡동에 부동산중개사업소를 열고 다시 원곡동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4. 2008년 원곡동으로 다시 오게 되었는데, 그 때는 어땠나?
 
부동산가게를 구하려니까 가게세가 비싸지고 권리금도 생기고 굉장히 많이 변화했다.
원곡동은 월세가 싼 지역이었고, 내국인들도 여기에 공단 노동자들이 많으니까 쉽게 식당을 열어 성공해서 타지역으로 나가서 식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래 식당이 많은 곳이었다. 음식업협회 일을 하다보니 이런 것을 잘 안다. 한국식당이 많았는데 2008년 들어오니 중국식당은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시아 식당들이 많아진 것이다. 놀랬다.

다문화특구로 지정된 원곡동 다문화거리 현재 모습
 
5. 10년 넘게 부동산중개업을 하였기 때문에 원곡동의 변화상을 잘 알 것으로 판단된다. 원곡동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변화는 어떠한가?
 
2009년경 이명박 정부 때 2차 주거환경개선 정책이 실시되면서 안산역 일대가 준주거지대로 지정되면서 확 바뀌게 되었다. 문제는 주차난이 심각해졌다. 17세대당 주차장 6개를 설치하면 허가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주차난 해소를 위해 건축법이 바뀌게 되었다.
그때 원룸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방이 없어서 시화(정왕동)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원곡동이 포화상태가 되니까 고려인들이 아마 선부동으로 넘어간 것같다. 또 원룸 방세가 원곡동이 30만원 대이면 선부동 땟골은 20만원대였다. 고려인들이 방값이 저렴한 선부동으로 간 것으로 판단된다.
 
6. 최근에 이곳 부동산에 또다른 변화가 있다고 하는데?
 
현재 원곡동 부동산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고려인들이다. 작년부터 고려인들이 원곡동에 많이 들어왔다는 것을 확 느끼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변화이다. 사드문제 등 한중관계가 냉각되면서 중국동포들이 많이 안들어오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고 또 중국동포들은 들어올 사람 거의 다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곡동에 고려인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19살 된 고려인 청년이 들어와 방 계약서를 쓰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러시아 계통이고 엄마가 고려인이라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도 고려인과 가족관계가 되면 다 들어온다고 하더라.
   
7. 그럼 원곡동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있나?
 
2008년 이후 원곡동 부동산 시장 변화 특징을 보면, 원곡동의 집값이 비싼 편이다. 세가 잘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래가 뚝 끊겼다.
원곡동 부동산 매매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사람들이었다. 임대업을 목적으로 원곡동에 투자를 하여 임대수익을 얻어가는 것이다. 원곡동뿐만 아니라 시화 정왕동도 대부분 건물주는 서울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주인이 살지 않는 건물이 대부분이고 부동산에서 관리를 해주고 있다.
2015년 원곡동이 주거지역으로 풀리면서 전세가 없어서 못 구할 정도가 되었다. 월세를 내느니 전세를 하면 돈을 버는 셈이 되기 때문에 전세를 얻기 위해 원곡동으로 몰리는 현상이 있었다.
그런데 배곧신도시, 송산신도시가 생기면서 빌라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가는 사람이 늘어났다내놓은 빌라를 중국동포들이 많이 구매하는 것같다. 선부동 땟골 맞은편에도 신축빌라가 많이 건축되었는데, 이곳으로 중국동포들이 빌라를 매입해 많이 들어간 것같다.
 
8. 원곡동에 음식점 현황을 알 수 있나?
 
음식협회가 잘 알거라 생각되는데, 내가 총무로 있을 때 파악된 것은 100여곳이 넘었다. 중국식당이 가장 많고, 동남아시아 외국인식당들이다. 지금은 150여곳 정도 되지 않을까 추산된다.
 
9. 원곡동에 중국식당이 많은데, 어떻게 보는가?
 
중국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이 중국동포들이 대부분인데 이젠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중국식당이 많이 생기면서 권리금도 1, 2억에서 35천까지 뛰어오른 가게도 있다. 권리금이 오르니 건물주인이 월세를 올리는 경우가 생기고 인건비도 오르니 식당 운영이 만만치 않다. 거기다가 중국동포가 줄어들고 고려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비시장에 변하가 오고 있다.
고려인 동포들은 중국동포들과 비교해 다소 소비형태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국동포들은 서로 잘 알아 쉽게 어울려 식당 가고 노래방 가고 그러는 것같은데 고려인 동포들은 같은 고려인이라 해도 국가별로 다른 성향이 있고 아직 한국에 막 들어오는 초기 단계라 소비력이 약한 편이다. 
중국식당 메뉴도 보면 가지 수는 많지만 거의 다 비슷비슷한 것같다. 식당마다 차별화되고 특화된 메뉴를 내놓아 외부 손님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10. 2009년 원곡동이 다문화특구로 지정되었다. 주민자치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보나?
 
다문화특구가 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이 없다. 사실 다문화특구로 지정한 의미가 뭔지 잘 모르겠다. 간판이 정비되고 준주거지에 수입도소매상이 많이 생긴 것 외에는 별로 변화된 것이 없다. 다문화특구로 지정해 활성화 시키려면 준주거지를 상업지로 풀어주어야 되는데 그런 후속조치가 아직 없다. 
 
11. 주민자치위원에서는 다문화특구얘기 안하는가?

원곡동은 행정적으로도  외국인이 많아 언어 안통하고 민원시간이 길어지고이런 것 따져서 공무원 수 늘려야 한다고 보는데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다문화특구 같으면 거리에 꽃이라도 꽂아 놓아달라” 만국기라도 설치해달라. 그러면 외국사람들이 자기 나라 국기 보고 좋아하지 않겠냐하는데…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 
 
12.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원곡동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원곡동은 마라향내 나는 곳이다. 이슬람사원도 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있어 복잡한 곳이기도 하지만, 이슬람교 사원 보니 이집트, 수단, 우즈베키스탄 등등 국적은 달라도 종교가 같으니 다같은 형제라면서 잘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간 주민자치위원장 하면서 느낀 것은 원곡동의 희망은 관광으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세계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2018년에는 꼬치축제를 열었고 올해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푸드 맵(음식점지도) ‘걸어서 원곡동 세계음식 속으로만들어볼까 한다. 928일 글로벌 원곡동 꼬치+누들축제를 통해서 각 국가별 음식팬도 만들어보고, 한국손님 받게끔 메뉴판 바꾸고 환경을 개선하도록 추진하려고 한다.<>
 
한중문화학당 기획보도팀
인터뷰: 임영상(한국외대 명예교수),
김용필(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
정리: 김용필
영상/사진: 림학(한국외대 문화콘텐츠학 박사과정)
 
<본문은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기획기사로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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