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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동사람] 고려인 제1호 기업 임페리아(IMPRERIA) 그룹 김 넬리 가족 이야기

"임페리아는 엄마의 눈물과 아버지의 노력" ... 고려인동포사회의 희망이 되다!

한중문화학당 기획보도팀 기자 | 2019.06.26. 17:35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임페리아 레스토랑 앞에서, 한국외대 임영상 명예교수와 제자 최야나(고려인 유학생)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사진을 남겼다.



"
한국 속 아시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 음식점과 식자재 마트를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을 들러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리안드림을 안고 이국타향으로 온 이주민들의 눈물 나는 한국 정착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기획취재팀은 6월 대표적인 다문화 거리, 국경없는 마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을 기획취재하였다. 귀환 고려인 동포 3세가 설립한 임페리아(IMPERIA) 그룹 성공 이야기와 김 넬리 대표 가족의 한국이주와 정착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면 승리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임페리아사업장을 일떠세우고 있는 고려인 동포3세 김 넬리 가족의 삶을 들어보면서 떠오르는 사자성어였다.
 
안산 원곡동에서 우뚝 선 고려인 1호 사업체 임페리아(IMPERIA) 성장신화는 2000년초 서울 동대문 시장, 중구 광희동의 작은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넬리와 바실리이라는 작은 식당이다. 이 식당 이야기를 하기 전에 김 넬리 씨가 어떻게 해서 서울 광희동까지 오게 되었는지 들어보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 넬리 임페리아 대표

저는 1953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시골 도이체파에서 출생한 고려인 3세입니다. 할아버지 고향이 어디이고 언제 러시아로 이주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저는 타쉬켄트 의료전문학교를 졸업해 병원에서 혈액검사원으로 3년간 근무하다가 1989년 구소련이 붕괴되는 페레스토로이카(개혁이라는 의미의 러시아어)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후 러시아 법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1994년 러시아국적자가 되었습니다. 법원에서 8년간 일을 하다가 우수리스크에 중국상인들이 많이 오가며 교역을 해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수리스크에서 가죽제품 교역사업을 했습니다. 돈을 버는 듯했지만 환율이 악화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아들만 넷을 둔 상태에서 우리 가족을 어떻게 해서든지 먹여살려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생각하고 바이칼호에 고려인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그쪽에 가서 살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가면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한국하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나라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을 대표해 먼저 한국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가서 어떤지 생활해보고 좋으면 가족도 나올 수 있게 하겠다는 생각이었죠.
한국에 와서 처음 거주한 곳이 바로 서울 동대문(광희동)이었습니다. 이곳에 고려인,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 와서 한국식당에서 일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 법원 등에서 일을 해온 제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식당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았구요, 너무너무 스트레스 받아 산밑에서 홀로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남편한테 모처럼 전화가 오면, 먼저 나오는 말이 한국에 절대 오지 말라는 말뿐이었습니다. 너무 힘들다. 그냥 우리가 모스크바에 가서 살자 그러면 남편은 한국이 그렇게 힘든 곳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도 남편 바실리이는 11살된 막내 아들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남편 나이 45. 한국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일은 잘했지요.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빌딩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일을 하면서도, 생활은 여관비조차 아끼고자 사우나실에서 서로 떨어져서 잠을 잤습니다. 저는 여자 칸에서 남편은 아들과 함께 남자 칸에서.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한국생활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3, 한국에 첫발을 내딛게 된 김 넬리와 남편 바실리이에게는 대전환의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이미 슬하에는 4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중 11살된 막내 아들은 한국에 데려와 가족이 불법체류하며 지내던 암흑과 같은 시기를 보내야했다.
 
"우린 절대 죽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넬리-바실리이 부부는 부끄럽지 않게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한다. 한국에 와서 성공을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졌다. 동대문(광희동)에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오니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러시아 식당이었다. 남편은 빵을 잘 만들었다. 그리고 식당이름을 넬리와 바실리이로 정했다고 한다.
 
고향에서 넬리와 바실리이가 죽었다 이런 소문이 나요. 한국에 가서우린 절대 죽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보여주겠다 결심하고 식당에 우리 이름을 붙힌 것입니다. 동대문에서 우리 둘이 제일 처음 러시아 식당을 했어요, 지금의 사마리칸트 식당은 훨씬 후에 생겼어요. 식당에 사람들이 줄 섰어요, 넬리 바실리이가 한 음식이 아주 맛있다 소문이 나서 안산 사람들이 소문 듣고 다 동대문에 왔어요. 우리는 식당을 해서 2년만에 14천만원을 벌었지요. 안산, 인천에서 바실리이 양꼬치 샤슬리 다 소문 나고 너무너무 잘 되었어요. 2, 3년 잘 되었는데. 그런데 망했어요.”

김 넬리 씨의 말을 듣고 정리해보면, ‘넬리와 바실리이식당은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동대문(광희동)에서 한참 잘 되었다가 문을 닫고 만 것이다.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는 법무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이 심해서 그 여파로 손님이 줄어들고 겨우 유지해오다 결국 식당 보증금까지 다 까먹게 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밑바닥으로 다시 주저앉게 된 김 넬리 가족은 안산 원곡동에 오게 되었다. 그 때가 2010.
큰 아들이 엄마 아버지 우리 안산에서 다시 시작해요, 거기 가면 사람 많아요, 아무 데 가서도 우리 잘 살 수 있어요. 절 믿어요 말해요, 우리는 동대문에 오래있다보니 떠나기 싫었는데 울면서 안산에 오게 된 거예요.”
 
원곡동 첫 인상은 재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토요일 주말이면 거리에 바닥이 안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요. 대부분 외국사람들이어서 놀랬어요. 고려인,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사람들도 많았고. 이를 본 남편이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되겠다 용기를 갖고 비싸지 않은 곳 상가 2층 적은 공간을 얻어 물만두를 빚고,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요. 한 달, 두 달 지나니 2층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끊이지 않았어요.”
안산 원곡동에서 고려인 1호 기업 임페리아(IMPERIA)’가 김 넬리 가족에 의해서 탄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임페리아는 원곡동에서 러시아 식자재 전문 마트로 시작해서 까페, 레스토랑으로 확장되어 지금은 그룹을 이루고 있다.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8 세계음식박람회에서 임페리아 그룹은 홍보부스를 설치해 사업현황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안산에만 레스토랑, 까페, 마트 등 4개의 사업장이 있다. 원곡동의 유럽, 러시아 식자재를 수입해 판매하는 도소매 마트 본사와 레스토랑, 까페, 선부동 땟골 고려인마을에 레스토랑 1, 그리고 안산 상록구 한양대 앞에 레스토랑 1개가 운영 중이다. 5년 전에는 부산, 광주광역시에도 사업장을 확장하고, 2년 전 한국에서 첫발을 내딛었던 동대문 광희동에 아예 53억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해 러시아 최고급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러시아, CIA국가 보드카 등 주류 대리판매권을 갖고 전국에 5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경기도 화성에 빵 공장, 평택에는 소세지 공장까지 자체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고려인 동포들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임페리아는 엄마의 눈물! 아버지의 노력!”

지금은 임페리아하면 고려인 사업가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10년도 안된 신생기업이 어디에까지 성장할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임페리아가 이처럼 놀라운 성장을 이루는데는 큰 아들의 역할이 컸다고 김 넬리 씨는 말한다.
 
큰 아들이 사업수단이 좋아요, 똑똑해요. 사업을 하려면 최고로 해야 한다.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해야 한다면서, 여기(원곡동 레스토랑)도 딴 데 하고 분위기가 다르죠. 인테리어로 돈 많이 들어갔어요. 한양대 앞 레스토랑은 5억원이 넘게 들어갔어요, 광희동 건물은 현재 세입자 문제만 해결되면 최고급 러시아 전문 레스토랑을 만들자고 해요, 어떤 때는 큰 아들이 너무 크게 밀고 나가니까 제가 말릴 때도 있어요, 과거 일들이 떠올라서 저는 조심스러운데,그런데 이젠 알아요, 아들이 하면 똑바로 한다는 것을 . ”
 
올해 나이 67세가 된 김 넬리 씨, 큰 아들에 대한 믿음이 컸다. 임페리아(Imperia)는 무슨 뜻일까? 영문 사전을 찾아보면 이탈리아 서북부의 항구 도시 이름으로 나온다. 그러나 또다른 깊은 의미가 있었다.
 
임페리아가 잘 된다고 하니까 임페리아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큰 아들에게 물어보니 임페리아는 엄마의 눈물, 아버지의 노력을 다 합한 것이라고 말해요. ‘엄마 아버지의 눈물과 노력, 고생한 것 이 모든 게 다 임페리아에 담겨 있어요, 엄마 조금만 참아 내가 그것 다 갚아주겠어요, 사람들이 다 알도록 해주겠다면서.”
 
참으로 멋진 말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로, 다시 극동의 우수리스크에서 바이칼호(이르쿠츠크)로 아들 넷을 데리고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는 김 넬리 가족의 이주사는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땅에 와서도 올라갔다 떨어지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이를 지켜본 큰 아들은 엄마 아버지의 눈물과 고생을 헛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의지 속에서 놀라운 사업적 기질이 발휘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들들은 '의 좋은 형제'...임페리아 함께 키워
 
김 넬리씨는 11살 때 한국에 데려왔던 막내 아들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방학기간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막내아들은 3개월 후 석달간 불법체류 생활을 하다가 러시아로 돌아갔다. 러시아 법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던 김 넬리 씨는 막내아들은 법학을 공부해 러시아에서 성공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러다 2003년 투자비자(D-8)로 합법신분을 갖게 된 김 넬리 부부는 막내아들을 다시 불러들여 주한러시대사관에서 운영하는 러시아학교에 입학을 시켜 공부하게 하였다. 알마티의 남편 누나 집에 있다가 3년만에 돌아온 것이다. 공부를 잘한 막내아들은 엄마의 바램대로 모스크바대학 법학과에 들어갔지만 아쉽게도 공부를 중단했다. 역시 사업을 하고 싶다 하여 지금은 한국에서 임페리아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안산 원곡동 레스토랑 벽에는 커다란 사진이 하나 걸려있다. 흰색바탕에 커다란 임페리아 상호를 배경으로 30대 젊은 남성이 손가락으로 V자를 내보이며 서 있는 사진이다.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김 넬리 씨는 눈가에 금새 눈물이 맺힌다.
우리 아이들은 4형제가 의가 아주 좋아요. 임페리아는 형제들이 일으켜 세워놓은 것입니다. 다 좋은데..둘째 아들 이름만 나오면 울어요, 저 인테리어 안 하자고 했어요. 둘째 아들 날 닮았어요. 다 잘 되어 갔는데, 둘째 아들만 살아있으면 .”

김 넬리 씨는 4명의 아들이 있다. 그 중 둘째 아들이 2년 전 국적을 바꾸러 러시아에 갔다가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서른 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림 속 남성이 바로 둘째 아들이었다.

둘째 아들은 엄마의 또다른 눈물이 되었다. 이것 또한 큰 아들은 소홀히 넘기지 않는 듯하다러시아를 수시로 다니며 둘째 아들을 위해서 러시아에 커다란 호텔을 짓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김 넬리 가족의 이야기는 임페리아 그룹의 성장사와 함께 고려인 동포사회의 희망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갖게 해준다.

한중문화학당 기획보도팀
인터뷰: 임영상(한국외대 명예교수)
김용필(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
정리: 김용필
영상/사진: 최야나(한국외대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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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기획기사로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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