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동포가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면 그를 어찌 동포라고 하겠는가?"

 


/허경수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길림성 화룡시)


손자가 있으니 살고 싶다. 얘가 시장감이야

 

나의 매형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여덟살짜리 손자를 두고 늘 이렇게 자랑하군 했다. 매형의 며느리는 중국의 한족 여성이기에 아들애가 애를 먹일 때 마다 워따쓰니(내 너를 때려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무식하고 우매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매형의 아들은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한 한국어와 중국어도 잘 못 하는 반문맹이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가 장래에 큰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자기 민족의 언어와 예의범절조차 모르는 애가 큰 일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느 날 나는 안쓰러운 심정으로 매형에게 권유조로 말했다.

 

매형, 손자를 곱다고 그저 어루만지고 자랑만 하지 말고 한국어를 배워주는게 옳겠어요.”

 

매형은 손을 홱 젓고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큰 일을 하자면 대국어(중국어)를 잘 해야 한다. 그까짓 한국글을 알아선 무얼해? 연변을 떠나면 못 써 먹는데

 

나는 태도가 완고한 매형과 며칠동안 정전담판을 했지만 별로 소득이 없으니 외조카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가 총명해서 마음에 드는데 우리 말과 예절을 전혀 모르니 서운하구나

 

내가 상냥한 어조로 말을 떼니 외조카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그잘난 한국말을 모르면 뭐라나요? 중국에서는 중국말을 잘 하면 돼요.”

매형과 외조카와 대화를 나누고 난 나의 가슴은 삽시에 갑갑해났다. 중국 공민으로서 한어를 배우는 것은 물론 응당한 일이지만 자기민족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한국어를 무시하는 그들의 소행이 안타갑게 느껴졌고 자기 민족의 존엄을 헌투레기마냥 팽개치는 태도에 반발심이 일어났다. 한국어를 무시하고 한어만 중시하는 동포들이 나의 매형과 외조카뿐만 아님이 필자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몇 해 전 우리 마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적는다.

 

참군하여 3년만에 집에 돌아온 한 청년은 고향의 친구들을 만나서 한어로만 하면서 하는 말이 난 조선어를 다 잊어 먹었다.’고 했다.

한 민족은 자기의 언어로 자기 민족의 의사를 표달하고 영혼을 표현한다. 만약 동포가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면 그를 어찌 동포라고 하겠는가?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고 후대들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치자면 어른들로부터 평상시에 자식들 앞에서 규범화된 한국어를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적지 않은 동포들은 규범화된 한국어를 잘 모르고 사투리를 남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나그네’ ‘우리 앙까이는 응당 나의 남편’ ‘나의 아내로 사용되어야 한다. 적지 않은 동포들은 우리 말은 너무 쉬워서 배울 멋이 없다.’고 한다.

필자는 그 큰 소리를 친 동포에게 다섯 손가락을 펴 보이며 표준어로 명사를 말해보라고 하었는데 그 사람은 그만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너무 쉬운한국어를 잘 모르는 동포들이 많으니 참 안쓰럽고 심사숙고할 문제인 것이다. 공자는 아침에 인생의 도리를 알고 저녁에 죽어도 무방하다.’는 명언을 남기셨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야만 헴이 드는 것이 아니다. 큰 일을 못 할 지언정 자기의 말과 글을 알고 정확하게 사용하는 우리 동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의 민족의 언어와 글을 모르는 사람을 어찌 젖을 떼고 밥을 먹는 정상적인 동포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국어는 생동하고 사용하기 간편하여 영어와 그 우렬을 비교하기에 너무나도 넉넉한 여유를 갖고 있다. 아름답고 장중한 한국어는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잘 전수되어 대대손손 전해져가야 할 것이다. 한국어는 우리 민족의 얼굴이고 영혼이고 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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