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운항 여객선에서 펼쳐진 그때 그 시절 공연

중국 지식청년 공연단과 필자(가운데)
중국 지식청년 공연단과 필자(가운데)

50년전 즈칭활동 사진
50년전 즈칭활동 사진

[중국 강소성=김충정] 이달 초 우연한 기회에 중국 강소성 연운항으로부터 한국으로 떠나는 여객선 LYG에서 약 80여명의 6, 70대의 중년들이 집체로 팔에는 지식청년(知靑)이라고 쓴 완장(脕章)을 걸고 손에는 <중국 사천성 광원시, 면양시, 하남성 평정산시 지식청년 한국여행 방문단>이란 프랜카드를 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저녁 9시가 되니 선박 위 딴스홀에서 그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공연이란 바로, 50여년 전 18세 미만의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일할 때 그 시기의 그 열정, 그 모양 , 그 노래와 그 춤이였다. 바로 문화혁명(文革) 초기의 그 모양새였다. 어찌 보면 중국 50여 년 전 역사 흐름의 재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의 공연은 중국여권을 가지고 탑선한 300여명 중국인들과 80여명 한국인들의 환호 소리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중국인들은 그때 그 시기를 회억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었다. 왜냐?! 그 시기 성시 호적을 지니고 있는 모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필업생들은 100%로 짐을 싸 가지고 농촌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 성시에 있는 60, 70대 사람으로 지식청년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그때 대학생들은 제외 되지만) 필자도 그때 그 시기를 회억하면서, 그들과 인터뷰를 하였다.

 

: 20181222일은 즈칭(知靑) 50주년 따칭(大慶)이라 하는가?!

중국의 즈칭은 19681222일 인민일보 사론(社論)知識靑年到農村去, 接受貧下中農再敎育(지식청년들은 농촌으로 내려가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글이 실렸다. 이 사론이 있은 후 대학생을 제외한 모든 학교의 필업생은 농촌으로 내려갔다. 때문에 20191222일은 지식 청년 하향 51주년이다. 지난해에 거국적으로 60, 70대 중장년들이 50주년을 성대히 경축하였다.

 

: 50년 전 지식 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간 구체 정황은?!

그때 당시 모든 학교의 필업생들은 전부 농촌으로 하향하였는 바, 그 중에서도 13, 14세 초등학교(소학교) 필업생들이 많았다. 남방의 학생들이 기본상 동북으로 내려갔는데, 예를 들면 길림성 연변에는 상해 지식청년, 강소성 학생들은 흑룡강성에, 당시 전국에 8000만 지식청년이 있었다. 지식 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간 시범점(示範点)은 기실 1963년도가 시작이다. 1978년에 등소평의 주최로 전국에서 대학시험이 회복 되었고, 1979년에 전부의 학생들이 도시로 돌아갔다.(反城)

 

: 전국적으로 지식청년 조직이 있다고 하던데?!

50년전 8000만 지식청년들은 당시 매 집체호(集體戶) 인원들을 기준으로 기본상 연락점(聯絡店)을 결성하였는 바. 성급 연락점은 국외 미국, 캐나다, 오스트라리아 등 나라까지 포함하여 80여개가 있다. 총점(總店)은 하남성에 두었다. 지금도 같은 집체호 식구들 끼리는 연락이 잘 되어 가고 있으며, 가끔씩 큰 행사도 벌린다. 이번 행사도 여러 집체호 행사이다.


:50년전 즈칭으로, 농촌으로 내려 갔던 감상(感想)?

 (): 저희는 하남성 허창(許昌)사람으로 평정산(平頂山)지청 연락점에 있다. 73년도 13살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남성정현광활천지공사(河南省鄭縣廣闊天地公社) 농촌에 내려갔다. 나이가 너무 어려 고생도 좀 하였지만, 그때 그 고생이 나의 인생의 밑거름이 되어 나의 인생길에서 모든 곤난을 박차고 지금까지 풍요롭게 잘 살아 왔다.


 
이추(李秋): 저희는 사천성 광원시(光元市)지청 연락점에 있다. 70년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17세 나이에 길림성 농촌에 가게 되었다. 지금 중국 성시 호구를 지니고 있는 60, 70대 중국의 주요 일군들은 모두 지식청년 출신으로 농촌에 갔던 사람들이다. 지금 보는 바와 같이 50년전의 그런 고생이 있었기에 중국 근대사에서 정치상 경제상 어려운 풍파가 있었을지라고 그때 그 세대들은 지금 모두 풍요롭게 잘 지내고 있다.

 (): 저희는 사천성 면양시(綿陽市) 지청 연락점에서 왔어요. 14살 때 동북 흑룡강성에 하향했어요. 그때는 철부지였는데 지금 그때 집체호 생활을 돌이켜 보면 우습기도 하고, 재미 있기도 하고, 고생스럽던 생각도 나지요, 그 당시 그 마을 농민들은 우리들을 친 자식처럼 많이 돌보아 주었어요.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겠지만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감사 하게 생각 합니다. 그때 그 집체호 식구 들은 지금도 연락이 잘 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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