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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편] 한국인 조순희 이야기⓷ 가리봉동의 새로운 바람, 중국 한족과 도시재생

"도시재생 한다지만..."

동포세계신문 편집국 기자 | 2019.03.21. 03:56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조순희씨가 20년간 운영해온 가리봉동의 명물 중국식품점 전경, 골목길 확장공사로 올해 5월말까지만 운영하고 사라질 위기에 있다.
<본문은 2018년 가리봉동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서울시, 구로구 지원)에 참가한 한중문화학당 가리봉텔러팀 임영상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주동완(재미동포, 코리아리서치 원장)이 합동취재하고 주동완 원장이 작성하여, 가리봉사람이야기(소책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조순희 사장의 중국식품은 중국동포들이 가리봉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중국동포들의 쉼터 역할을 했다. 가게 앞 쪽에 6대의 전화기를 설치하고 전화카드를 팔아서 중국동포들이 중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고, 이제 막 공항에서 내린 중국동포들은 무조건 조 사장의 중국식품점으로 와서 가방을 맡겨 놓기도 하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가족, 친지, 친구들을 만났다고 한다.
 
조 사장의 중국식품은 중국동포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어느 중국동포 젊은 여인이 들어와 자기 월급을 조 사장의 은행계좌로 받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갔다. 초기에 많은 중국동포들이 불법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받아도 은행계좌가 없어서 월급을 받을 수가 없었는데 조 사장이 그의 계좌를 빌려줘서 자신의 계좌로 중국동포들의 월급을 받아 전달해주었다고 한다.
 
조순희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왼쪽 주동완 코리아리서치 원장,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편집장, 사진 오른쪽은 임영상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여기가 일단 중국식품이라 하니까 여기를 보면 의지를 하는 거예요 저런 한국 식품 이런 데보다도. 일단 마음적으로 의지가 되나 봐요. 뭘 물어 보려고 해도 다른 데 가서 못 물어보고 꼭 여기 와서 물어보고. 여기가 만남의 장소가 되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옛날에 우리 가게 앞에 전화기 6대를 놨어요. 공중전화를... 그러면 여기 계신 중국동포분들이 친척들이나 누가 찾아오는데, 본인들은 현장에 일 나가야 하면, ‘가리봉 시장 안에 오면 중국식품이 하나 있다. 그 앞에 와서 기다려라. 거기에 공중전화도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공중전화로 연락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 가게에 역사가 많아요. 다 이야기 할 수가 없는데... 전화 카드도 처음 만들었어요. 저기 뭐죠? 전화카드를 많이 팔아서 운세통신에서 상도 받았어요. 공로상도. 그 정도로 많이 했었죠. 공중전화도 6대나 있었어요. 중국에서 오면 가리봉 식품점 가면 전화가 있으니까 거기서 전화를 해라, 그래 놓고 여기 와서들 전화를 걸었어요... 중국에서 처음 가리봉에 사는 친구나 친척을 만나러 왔는데 낮에는 다들 일 나가고 집에 없어요. 그럼 왔던 사람이 집에 못 들어가니까 여기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가 만남의 장소인 것이에요. 오면 가방들 다 밖에다 놓고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에요. 여기 와서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사람들이. 고향의 냄새도 나고... 5년씩, 10년씩 못 만난 사람들끼리 보니까... 만나면 막 울고... 너무 반가워서요. 또 외삼촌이라든가 뭐 사촌간이라든가 중국에 있을 땐 못 보다가 여기 와서 보는 거야. 물건 사러 왔다가. 그럼 자기네들끼리 부둥켜안고 울고, 너무 좋아하고. 그리고 또 밤에 와서 이야기해요. 자기들은 아침에 일찍 직장들 가니까, 내일 우리 동생이 오면 여기서 자기 올 때까지 좀 봐 달라고.”

 
 
조순희 사장의 중국식품은 정말 중국동포들의 쉼터요, 만남의 장소요, 고향집과 통화의 길이요, 짐 보관소에다가 중국에서 처음 오는 가족들의 돌봄센터와 같았다. 그래서 많은 중국동포들은 조순희 사장이 자기들과 같은 중국동포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처음엔 모르고 들어오죠. 모르고 들어왔다가 나중에 내가 한국 사람인 줄을 아는 경우도 있고. 또 지금도 내가 교포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또 장사를 하다 보면 때에 따라서는 내가 교포라고 말해야 될 때도 있어요. 그냥 안 좋아해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안 좋아하죠. ‘이왕이면 같은 중국동포가 장사하는 데 가서 팔아 줘야지.’하는 생각을 하는가 봐요. 상황에 따라서 내가 중국동포가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면 중국동포들이 계속해서 어디서 왔느냐, 중국에서 뭐 했느냐... 이렇게 계속 물어보니까 중국말이 딸리면 어떤 땐 북한에서 왔다고 하기도 하고. (웃음)”

조순희 사장은 중국말로 기본적인 회화는 할 수 있고 듣는 것은 어느 정도 거의 다 들을 수 있게 되었다.
 
“(
중국동포 손님들이) 여기 들어오면 일단 중국식품이니까 먼저 중국말을 먼저 하세요. 이제 제가 한국말을 하면 그제서야 한국말이 나오고.”
 
가리봉동 중국동포 거리이자 메인 상업거리인 우마길 입구에는 문화의 거리 상징탑이 건립되어 있다. 향후 가리봉동을 문화예술마을로 만들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가리봉동의 새로운 바람, 중국 한족과 도시재생
 
요즘은 한족들이 많이 오죠. 이 거리는 이제 다 거의 한족이에요. 중국동포들이 없어졌어요. 다른 데로 다 갔나 봐요. 왜냐하면 이제 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일자리를 조금 빼앗긴 셈이죠. 아침이면 인력시장이 서잖아요. 거기서 일 받아가서 일 하는 거죠.”라고 조순희 사장은 또 다시 변화하고 있는 가리봉동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한족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하기를 조금 꺼린다.
 
한족들은 인식이 별로 안 좋죠. 그렇지만 저는 더 많이 배려하고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크게 느끼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느꼈을 때, 한족들하고 중국동포들하고 비교하면 중국동포들이 훨씬 신사적이고 좋은 것 같아요. 한족들은 한마디로 무대뽀예요. 일단 또 말이 더 안통하고 그러니까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완전히 달라요. 저의 가게에 한족들도 많이 사러 오는데, 또 중국동포들이 먹는 거 하고는 한족들이 먹는 거 하고 다르더라구요. 그 사람들은 거의 면 종류, 빵 종류를 많이 먹어요. 주식이 빵이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저 쪽에 빵 가게 중에 꽈배기 파는 데가 장사가 잘 되요. 조선족들은 주로 식당을 이용하고 하는데 한족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안 해요. 돈 아끼려고... 한족들이 많으니까 식당이 장사가 안돼요, 평일에는. 주말에만 조금 되는 거예요. 외부에서 중국동포들이 들어오니까 그나마 식당들이 유지되지요. 한족들은 라면이나 저런 빵집에서 빵 같은 거 사서 먹지 식당 가서 먹지는 않지요. 그 사람들은 다 단기 비자로 돈을 벌러 왔기 때문에 돈을 쓰지 않죠.” 또 조씨는 이어서 우리가 직접 뭐 가서 물어보지 않지만 가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한족들이 많이 들어와서 가리봉이 좀 더 지저분해졌다 그러죠. 거지동네 됐다고 그러더라구요.”

 
조씨는 딸만 둘인데. 결혼을 늦게 해서 아직 대학생들이라고 한다.
 
앞으로 중국 시장이 많이 커지니까... 중국어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한국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그렇고... 제가 비즈니스를 하면서 또 그걸 많이 느꼈으니까 중국어를 알아야 되겠다.”
 
라고 생각해서 딸들을 모두 중국 어학연수를 보냈었다. 최근 들어 조씨에게는 고민이 생겼다.
 
지금 60인데 앞으로... 요즘은 뭐 100세 시대니까 70까지도 제가 몸이 허락하면 저는 일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애들을 키우고, 가르쳐야 됐으니까 정말 20년 동안 문 한번 안 닫고 쉬지 않고 일을 했어요. 그런데 애들이 대학 졸업하면 이제 마음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겨요. 그래서 지금 이 나이에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보다도... 난 솔직히 이거 20년 동안 최초에 제가 이걸 해서... 가리봉에 장사하는 상인들도 전부다 우리 집을 거쳐서 가게들이 생겼는데... 식당들도 우리 집을 안 거쳐 간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가게를 계속 하고 싶어요. 돈보다도 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 집 할머니 주인이 나가라고 해요.”
 
건물 주인이 이제 나가달라고 하여 20여 년 동안 정들고 가족들의 많은 이야기가 서려있는 가게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주인 할머니의 성화뿐만 아니라,
 
가리봉동이 재개발 사업한다고 십년동안 묶여 있다가 다시 재생사업으로 바뀌면서 해제가 됐잖아요. 그래서 있던 쪽방들이 원룸으로 다 바뀌고 이제 도배 다시 하고 간판도 다시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제 소일거리로 그냥 돈보다도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하려고 했는데, 도로가 나는 거예요. 도로가 나면 이렇게 가게가 잘리는 거예요 직각으로... 저기서부터 돌아서 이렇게요. 그럼 이 가게가 작아져서 장사를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이거를 최초로 이걸 해서... 20년 동안 이걸 해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다 알죠 이쪽 계통에서는. 대림동에 최근에 생긴 가게 사람들 빼고는 이전에 사람들은 다 알죠. 근데 이 도로가 나서 가게가 없어지니까, 난 일자리도 뺏기잖아요. 굉장히 서운한 거예요. 할매가 나가라 해도 버티고, 울면서 빌어 20년을 지켜왔는데... 도로가 나서... 나라에서 쫓아내는 거예요. 나가야되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하고 20192월부터 실시예정인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잇지 못한다. 도시를 다시 살려보려는 재생사업이 오히려 가리봉 최초의 중국식품점을 죽이고 있다.
 
최근 들어 가리봉 우마길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간판들을 정비하고 있는 중인데 예전에 무질서하게 붙어 있던 간판들을 다 떼어내고 새롭게 입체간판들로 교체중이다. 도로도 새로 포장하고 낡은 건물들을 부수고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어서 많이 변화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전의 중국동포타운과 같은 정겨운 모습은 사라지고 상업적인 모습만 남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조순희 사장도,
 
정부에서 간판들 공짜로 바꿔주고 한다는데 오히려 길이 많이 죽었어요. 시골길처럼 한산한 거리 같잖아요. 불이 번쩍번쩍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우마길 들어오면서 길이 죽었어요. 밤에는 가로등이라도 켜줘야죠. 군데군데 가로등을 세워서 불을 환하게 밝혀 줘야지. 가게들이 문 닫고 가면 깜깜해요. 무슨 시골길 같아요. 예전에는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하고 했는데
 
김정수 신부가 운영했다고 하는 노동자의 집

천주교 신자인 조순희 사장은 이주노동자의 집을 운영했던 김정수 신부를 기억하고 있다. 김 신부는 가리봉동의 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을 위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쳐 빨리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녀도 김 신부를 도와 이주 노동자의 집의 홍보전단지도 돌리고 했다는데 잘 안 됐다고 한다. 문제는 주민들의 호응을 얻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성당에서 실시하는 가리봉 중국동포 주민 자녀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주민들이 신뢰를 하지 못해 실시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중국동포 엄마들이 이해를 안 하는 거예요 아이들 엄마들이... 솔직히 믿지를 못하는 거지요. 성당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아이를 보냈다가 뭐 잘못될까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많이 하려고 저도 전단지도 돌리고 했는데 안돼요...”
 
노동자와 이주자의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가리봉동은 이같은 시민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시민운동이 일어나기 힘든 지역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노동자로서 그리고 이주자로서 가리봉 중국동포 주민들이 겪어온 아픔과 슬픔이 서로 간에 신뢰하기에는 큰 간극을 만든 것이 한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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