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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편] ‘훈춘식당’ 최정순 이야기 ⓵ 북한 보따리장사와 러시아 장사

도시생활 꿈꾸며 훈춘에서 결혼생활, 아들들 공부시키려 ...

동포세계신문 편집국 기자 | 2019.03.22. 00:25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2006년 가리봉동에 와서 고향 이름을 딴 훈춘반점을 열고 고향음식 소고기국밥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최정순씨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본문은 2018년 가리봉동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서울시, 구로구 지원)에 참가한 한중문화학당 가리봉텔러팀 임영상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주동완(재미동포, 코리아리서치 원장), 림학(한국외대 박사과정), 정금령(홍익대 미술 강사)이 합동취재해 생애스토리를 작성하여, 가리봉사람이야기(소책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퉁소의 고향 훈춘시 밀강향에서 빈농의 딸로 출생한 최정순
 
밀강 퉁소마을 축제 1952년 용띠생인 진산 최씨인 최정순은 조선족의 전통악기인 퉁소로 유명한 훈춘의 농촌마을인 밀강촌에서 태어났다. 조선에서 건너온 최정순의 아버지는 양반 출신으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정순의 아버지는 중국 군대를 복무한 후에 양로단(养路队길 수리하는 데)에 배정을 받아 일했다. 그러나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농촌으로 들어갔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빈농은 좋은 성분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빈농협회 주석이 되었다.

 최정순이 초급중학교 1학년에 막 들어간 1966년 중국 역사를 크게 후퇴시킨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학교에서 총을 쏘는 등 사람들이 싸웠으며, 학교 건물도 폭발을 당해서 아예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 부농, 지주들이 많이 죽음을 당했는데, 그래도 최정순의 아버지는 빈농으로 성분이 좋아서 투쟁을 받지 않았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러시아 연해주 자루비노 항구에서 안중근이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서약한 크라스키노[연추]를 거쳐 훈춘 〜 퉁소의 고향 밀강 〜 도문 〜 용정 〜 연길 등을 거쳐 백두산까지 버스편으로 이동할 수 있다.)
 
최정순의 아버지는 6남매를 키우느라 빚을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정순은 아버지의 빚, 999원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로는 큰돈이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양복을 만들어 생활비를 벌었는데, 정순은 손위 오빠가 일찍 죽어 맏딸로서 어린 시절부터 집안 살림을 도와야 했다. 나이가 어리니까 사회에 나가 일은 할 수 없었다. 정순은 어릴 때부터 밭갈이도 하고 아버지 따라 나무까지 캐러가는 등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회의하면 총결을 짓는데 빚이 있는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정순은 4년 동안 마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마침 마을에서 회계하는 사람이 사촌 오빠였는데, 4년 만에 빚을 다 갚자 오빠가 정순아 함께 가자고 해서 누어 자는데 베개가 젖을 정도로 울었다.
 
아버지가 불쌍해서 어린 정순이는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그래서 모든 친척들이 아버지에게 정순이 은혜를 갚아야 한다. 정순이 없었으면 집안이 일어나지 못했다. 정순이 시집을 갈 때 많이 해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4년째부터 정순의 가족이 돈을 제일 많이 타게 되었다. 형제들이 모두 일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순의 아버지는 모택동 만세!”라고 불렀다.
 
정순은 개인 활동도 사탕도 먹을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참고 견뎌냈다. 정순은 5년 때부터 집체 활동에 참가했다. ‘진산 최씨 여자는 기사 세서 앉았던 자리에 풀도 안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빈농의 딸로 태어난 최정순은 어린 시절부터 강인한 생활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도시생활을 그렸던 최정순
, 결혼하여 훈춘시로
 
최정순은 197625살에 훈춘시로 시집을 갔다. 25살이면 당시로는 노처녀였다. 원래는 일찍 갔어야 했는데, 도시로 시집을 가고 싶어서 기다렸다가 시집을 간 것이다. 정순은 아버지가 농촌에서 고생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다리병신이라도 시내로 시집간다고 생각하고 남자 하나도 안 만나고 훈춘시내 사람이라고 해서 만났다. 정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속상해 했다. 정순을 시집도 보내지 못할까 걱정한 것이다.
 
정순의 남편은 훈춘시내에 살면서 농사를 지었다. 당시는 거의 모두 농사짓는 일밖에 없었다. 시내로 시집을 왔지만, 남편은 4형제 중에 막내인데도 어른을 네 분이나 모셨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노할머니. 또 작은 시어머니(후시어머니)도 계셨다. 어르신들을 모신다는 생각도 없이 도시 남자 하나만 보고 따라 왔는데. 시댁에 어려움이 있었다. 시누이가 셋이 있었는데, 모두 올케 밑에서 살았다. 새색시 최정순은 오직 밥하고 가축을 거두고. 4남인데도 시아버지가 넷째며느리가 어른을 모시는 것이 좋다고 해서 8년이나 모셨다.

 
훈춘에서 처음 생긴 식당에서 냉면을 만들어
 
최정순은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한영과 기영이. 아이가 둘이니까 장사를 못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가 세살일 때 농사를 져서는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훈춘에서 맨 처음에 생긴 식당에 가서 냉면을 만들었다. 그때는 요리하는 사람으로 조선사람은 없었다. 모두 한족이 요리를 했는데, 보통 냉면 만드는 것을 배워주지 않았다. 최정순은 그곳에서 일하는 진짜 복무원도 몇 십 명 알고 있었고 모두 먹고 살기 힘든 때이고 해서 냉면 만드는 것을 배웠다. 훈춘 식당에서 1년 요리를 하다가 다음에는 훈춘시 교육국 구내식당에서 3년 일을 했다. 그러니 손님이 많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합판공장에서 3년 일을 하다가 다시 교육국 식당에서 일했다. 또 농업은행 초대소에 조카가 있어 3년 일하다가 신용사(은행) 식당으로 데려와서 또 3, 결국 12년간 식당 일을 했다.
 
북한 장사와 러시아 장사
 
북한 회령시 전경

1980
년도 유한영 소학교때 최정순은 식당 일을 그만두고 북한 장사를 시작했다. 북한 장사는 이미 많은 연변 사람들이 시작한 터였다. 최정순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아들들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북한을 왕래하는 보따리 장사는 북한의 파리라고 불리는 회령 시내에서 했다. 중국에 갈 때는 연길에서 옷을 도매로 구입하여 가지고 가서 팔았다. 보동 북한에 한 번 들어가면 15일에서 30일까지 머물었으며, 중국으로 돌아올 때는 낚지(오징어), 명태, 해삼, 하마기름(개구리기름), 등을 구입해서 가져왔다. 값비싼 하마기름은 소매에 숨겨서 가져왔다.
80년대 초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살았다. 북한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정순은 3차례에 걸쳐 회령에서 장사를 했다. 낙지(오징어), 명태, 해삼, 하마기름(개구리기름) 등을 갖고 오면 돈이 되었다. 특히 하마기름은 옛날에는 비싸서 비행사 밖에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북한 보따리 장사는 위험 부담이 컸다. 특히 중국에 돌아올 때 많은 물건을 북한 관리들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한번은 머리를 썼다. 친구가 이미 한 절반을 뺏겼을 때, 친구한테 순복아. 내인데 순대 있다. 이분들 드릴 순대를 싸갔고 왔다.” 그래서 하나도 빼앗기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 장사는 너무 빼앗겨 마음이 조려서 더 할 수가 없었다.

최정순의 장사루트(북한, 러시아)
 
러시아 장사는 3년을 했다. 해삼, 블라디보스토크에 살면서 장사를 했다. 포그라니치나(거청)에서 스웨터 등 물건을 가져와서 블라디보스토크(해삼) 시내에서 팔았다. 러시아 장사에 통역을 한 것은 북한 사람들이었다. 같은 동포라서 마음이 편했는데, 참 러시아어를 잘했다. 러시아 장사는 북한 장사처럼 물건을 빼앗기지 않아서 좋았다. 장사도 잘 되었다. 러시아 장사를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아들 한영이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들 친구 엄마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왔다. 그 엄마가 너 한영이 어찌는 거 아니?” “어찌는 데” “전기 켜놓고 그리면 아버지한테 욕먹고 그래서 이불 덮고 엄마를 그린다.”고 했다. 아들의 여자 동창 아이가 한영이가 이불 밑에서 엄마를 그리워한다고 자기 엄마한테 말한 것이다. 아들 친구 엄마가 아들 한영이 상태가 좋지 않은데, 남편이 화를 낼 것이니 그만 빨리 집으로 돌아가 보라고 권했던 것이다.

최정순씨 인터뷰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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