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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예술인의 추억의 거리 '애단로 연가'로 다시 피어난다

박영일 작곡, 윤홍광 작사, 구련옥 노래

동포세계신문 편집국 기자 | 2019.04.30. 05:23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연변 연길시내 애단로’, 예술인의 거리가 최초로 노래를 갖게 되었다.

하늘하늘 가로수 마음속에 애단로 / 빨간 벽돌집 골목길 걷고 있으면 / 스쳐 지난 그리움 나날들이 떠올라~’로 시작되는 신곡 <애단로 연가>2019년 구정 연변텔레비죤 설야회공연에서 구련옥 가수의 목소리로 발표되었다.
 
애단로는 연길시내 예술인의 거리이다. 이곳은 연변가무단, 예술학원 등 예술관련 기관들이 들어서 있어 수많은 연변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청춘을 보냈다.
지난 311일 연변 아리랑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구련옥 가수와 작곡가 박영일 연변대 교수는 <애단로 연가>가 만들어지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영일 작곡가는 구련옥 가수를 위해 애단로를 주제로 한 곡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노래는 가사가 먼저 있고 곡이 붙게 마련인데, 애단로 연가는 곡부터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구련옥 가수는 1980년대와 90년대 한창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이미자 급 국민가수로 불리울 정도로 중국조선족의 대표 가수이다. 결혼 후 2000년도 들어서 가수활동을 멈추고 한참 후인 2015년 설야회 공연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 관심을 모았다.
 

 
구련옥 가수는 11일 연변라디오방송에서 일본에서 조선족 팬들로부터 구련옥의 목소리는 조선족을 대표하는 목소리이다라고 격려하며 가수활동을 다시 하라는 말을 듣고 재개할 결심을 하고 연길에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때 즈음에 박영일 교수도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변으로 돌아와 작곡활동을 재개했다.
두 예술인의 마음이 통했는지 이 때 처음 만나게 된다. 곡을 받아 본 구련옥 가수는 자신을 위해 만든 곡이라는 점에서 흥취를 갖는다. 노래말은 구련옥 가수의 개인사가 곁들여져 누구보다도 그의 노래가 되어 흘러나왔다.
 
그리워진 그 향기 옥이네 장국냄새 / 생맥주 양꼬치에 젊음을 불태운 / 애단로 십팔번지 흔적 잃은 청춘들 / 세월에 떠나보낸 향긋한 랑만에 / 젖어 오는 그리움 기억속에 애단로 / 오랜만에 그려본다 그 시절 그 떨림
 
가사속에 나오는 옥이가 구련옥 자신이라고 소개하였다. 옥이네 장국냄새는 어머니를 생각나게 해준다. 가수의 어머니는 창작 당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결국 창작곡만 들어보고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연변에서 최고 인기를 끌었던 생맥주에 양꼬치애단로 거리를 생각한다면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곡은 서울의 광화문 연가와 같은 비슷한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연변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다.
작곡가 박영일 교수는 말한다.
서울에는 영화인의 거리 충무로가 있고, 연극의 거리 대학로가 있으며 젊음의 거리 신촌홍대거리가 있다. 연길의 애단로는 연변예술인들에겐 청춘을 보낸 추억의 거리임에도 노래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애단로 연가를 작곡해야겠다 결심하게 되었고, 이 곡을 구련옥 가수가 꼭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단로와 구련옥 
 
연변일보 신연희 기자는 신곡 애단로 연가가 발표되자 1990년대 애단로의 풍경을 상세히 전했다.
90년대 당시, 연변방송예술단, 연변가무단, 연변예술학교, 연길시조선족예술단, 연길시조선족구연단 모두가 지금의 애단로에 자리잡고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청년예술문화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기숙사에서 공동체생활을 했고 통기타 소리와 노래소리로 애단로 거리를 한 가득 메웠다.
다같이 배고 팠던 시절,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평생을 무대와 함께 하는 게 꿈이었지만 생계를 위해서 부득불 떠나야 하는 친구를 위로하며 함께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밤이면 오구작작 모여 양꼬치에 생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동경하기도 했다. 돈이 없어 대부분을 외상으로 돌리기도 했었지만 그 걱정도 잠시, 누가 먼저라 할 것없이 시작된 젓가락장단에 맞춰 술자리는 곧 밥상공연으로 이어진다. 굳이 공연이 없어도 밤마다 술잔을 부딪치고 음악을 듣고 음악을 말했다.
돈이 없어 변변한 데이트도 못하던 시절, 애단로 가로등 아래에서 통기타 하나로 수줍게 마음을 전달하는 걸 세상 가장 큰 랑만으로 알고 있었던 순박했던 청춘들이였다. 한국이나 일본 음악이 정식으로 허용되기도 전이였고, 누군가 외국 노래 테이프를 구해오면 번호표를 뽑아 들고 돌려 듣기를 하면서 변화를 갈망했던 청춘시절이 였다. 예술가를 지망하는 동네 청년들도 한껏 멋을 부린 채 애단로 거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선망의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애단로 예술거리는 마냥 존재하지 않았던 듯 자취를 감췄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더이상 문화적 분위기는 풍겨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현역을 뛰고 있는 이들도 있고 아예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어찌 됐건 당시의 청년문화는 서서히 신세대 문화에 자리를 내줬다. 요즘은 밀레니엄(1980년대초부터 2000년대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 세대를 지나 Z시대를 론하고 있는 때이니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애단로는 그저 흔하디 흔한 거리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시 애단로는 예술의 성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중요 정거장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
 
애단로 예술거리에서의 10년으로 잔뼈가 굵어졌다는 구련옥의 주옥같은 노래들도 이 시절에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애단로 연가 작곡가 박영일 교수 프로필
현 연변대학 예술대학 음악학과 교수
한국 예술종합대학 작곡 석사
한국 성균관대학교 예술철학 박사
2017 <노래하자 연변 >창작 콩클 노래<눈꽃나라>가수 1등상 노래, <진달래> 창작 부분 1등상, 2등상
연변일보 예술평론위원, 예술세계 편집위원, 연변음악가협회 부비서장, 연변조선족 전통음악연구회 부비서장 겸 기획 본부장, 한국 문화정책학회 해외 이사, 한국 정악원 해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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