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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소 문화탐방기-서유기(西游記) 배경지 화과산(花果山)과 연운항(連運港)

"손오공의 고향은 운태산" 모주석의 제사(題詞)를 바라보며

동포세계신문 김충정 기자 | 2019.06.27. 11:04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서유기 배경지 화과산 정문에서

[
김충정의 중국기행=동포세계신문] 중국의 고대 4대 명작-삼국연의, 수호전, 홍루몽, 서유기라는 것은 세인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서유기의 작가가 누구이고 또 서유기의 창작 배경이 어디이고 손오공이 살았다는 화과산(花果山)과 수렴동(水帘洞)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명백히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38일 아침 6시에 천진역 뒤쪽 통사 여객터미널(通莎 客運站)에서 강소성 연운항 감유남참(竷楡南站)으로 직통하는 버스에 앉아 연운항에 내리니 오후 5시경이였다. 다음날 아침 다시 운대산 화과산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화과산 정문에 내리니 오전 9시가 되었다.
 
. 오승은과 해주(吳承恩与海州)
서유기의 작가는 청나라 오승은으로 강소성 회안, 해주(지금의 연운항) 사람이다. 그의 명작 서유기는 몇백년 동안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청소년들은 더 열광 적이다. 서유기 속의 주요인물 당승,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의 자연초상은 연운항시 중태산구(中台山區)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주봉인 화과산에 집중되었다. 또 수렴동, 마왕동 같은 명승들도 매우 많다. 아주 많은 문학연구인들의 고찰을 걸쳐 서유기는 연운항시 운태산을 기초로 떨어질 수 없는 혈연관계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당지에 사람들은 서유기의 모든 내용이 화과산에서 반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화과산 유람객과 원숭이들

. 원숭이들의 놀이터, 화과산과 후원(猴苑)
 
해주의 조기 문헌, 당송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원숭이들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과산의 원숭이들은 지금까지도 야생 본연 상태로서 자체로 먹을 것을 찾아먹고, 번식하고 있다. 특히 이곳 원숭이들은 아주 건전한 원숭이 왕국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누구라도 주의 깊게 잘 관찰한다면, 그들 속의 등급, 가족관계, 복잡 다단한 동물세계의 사회관계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단 하나 주의하여야 할 일은, 만약 유람객들의 몸에 먹을 것이 들려 있다면, 원숭이들이 찾아와 구걸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화과산 수렴동

. 수렴동(水帘洞)
 
수렴동은 화과산 중에서도 제일 특색이 있고, 제일 대표성을 가진 볼거리이다. 이곳이 서유기 손오공의 고향 수렴동의 원형이다. 일찍이 서유기가 창작되기 얼마 전에도 수렴동은 이미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동굴 바로 앞 바위에는 명나라 가경년대(1544)에 해주지사왕동(海州知州王同)의 제사 고산류수”(高山 流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수렴동은 화과산 정상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바, 동굴 입구의 바로 위로부터 폭포가 쏟아져 내려와 동굴로 들어가려면 폭포를 맞으며 빠른 속도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동굴 속에는 가지각색의 조각 소품들이 많이 널려 있다.
 
. 모공비(毛公碑)와 모주석 제사(題詞)
 
모택동 주석은 세 번이나 손오공의 고향은 강소성 신해련시 운태산 위이다(孫猴子的老家在新海連市蕓薹山上).”라고 말하였다. 제일 처음으로 서유기 중의 화과산이 강소성 연운항시 운태산이라고 지적해 말한 것이다. 모공비의 비문은 모주석의 붓글씨를 그대로 확대하여 쓰여진 것이다. 후세에 모주석의 이 제사가 씌어진 비석을 모공비라고 사람들은 부른다.
. 연운항(連云港)
 
연운항은 중국 대륙 중부 연해 도시로, 강소성 동북단에 위치하였다. 관할구역은 동해, 관운, 관남 세현과 감유(竷楡), 해주(海州), 연운(連雲) 세 개의 구가 있다. 지금은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 국가급 고신구, 국가동중서구역합작시범구로 면적은 7615, 인구 526만 이다. 연운항시는 역사가 유구한 도시이다. 7000년 전부터 인류가 이곳에서 생산활동을 하면서 생활하였기에 지금까지도 그때 그 시기 선조들이 남긴 벽화(岩畵)와 도시 유적들이 남아있다. (동이족) 2000년 이전부터 여기에 도시편제가 이루어졌는데 진나라때 구현(朐縣), 당나라 때는 해주(海州)라고 이름 지었다.
그 옛날 공자는 이곳에서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 보았기에 그 산을 공망산(孔望山)”이라 이름 지어 부르게 되었다. 진시황이 일찍 동쪽으로 순찰할 때, 이곳을 돌아보고, 진동문(秦東門)이란 돌을 세워두었다. 동도구선(東渡求仙)하려던 서복(徐福)의 고향은 련운항시 감유구 금산진(金山鎭)이다. 공망산 위에는 돈황 막고굴(敦煌 莫高屈) 300년 이전의 불교 마야 석각이 있다. 또 이곳에는 중국에서도 유명한 두 편의 랑만주의 고전 문학 명작 서유기와 경화연(鏡花緣)이 있다. <2019.3.8. 연운항에서 김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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