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니모는 내 인생의 스승...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김용필의 노트북을 열며] 지난 1112일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시사회 초청 메시지를 받았다. 용산아이파크몰 CGV에서 헤로니모 영화 시사회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헤로니모, 나에게는 아주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쿠바한인 이야기라고 해 호기심이 생겼다.

다큐멘터리 영화여서 그런지 일반 상업영화에서 느낄수 있는 박진감이라든가 극적인 재미는 덜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제작한 35세 재미동포 전후석 감독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변호사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해 헤로니모 영화를 제작한 그 배경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헤로니모 영화와 전후석 이야기를 풀어가보고자 한다.

전후석 감독 얘기를 하기전에 그래도 먼저 영화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같다.

 

헤로니모는 누구인가?

 

1926년 쿠바에서 태어난 한인이자 첫 번째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주도한 쿠바혁명에 참여해 후에는 체게바라가 산업부장관을 맡아 경제개혁을 주도할 때 경제관료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1988년 은퇴 후 시장 선거에 나가 당선도 되고 인민위원장도 지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국가경제가 어려워져 연금만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정부로부터 은퇴선물로 받은 1965년산 소련제 라다 승용차로 택시운전사로 일하면서 노년을 보내던 중, 1997년 독립운동가로 추대된 아버지 유해를 들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때 아버지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했던 나라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된 헤로니모는 코리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게 되고 쿠바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들을 찾아다니며 한인회를 재건하는데 여생을 바치다 2008년 사망하였다.

 

내 이름은 임은조입니다

 

영화는 헤로니모가 말년에 쿠바한인회를 결성하는데 왜 그토록 열정을 갖고 활동했는지를 자료화면과 지인들의 진술 등을 담아 보여주었다.

헤로니모의 한국이름은 임은조였다. 그의 아버지는 임천택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은 인물이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임천택이 누군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에 관한 상세한 소개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다.

1905년 두 살 되던 해에 홀어머니 품에 안겨 인천항에서 멕시코로 가게 되었고 18세 되던 해에 어머니와 함께 쿠바로 건너와 에네껜농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였다. 그 때 쿠바로 간 한인은 모두 288. 도착한 항구는 마딴사스였다.

영화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토하는 해외 이민자들의 기록필름을 보여준다.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임천택은 대한인국민회 쿠바지회를 설립하고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에 보낸다. 쿠바의 조선인들은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에네껜 노동으로 번 돈을 모아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이었다. 하루 임금 1센트도 안되던 시절,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쿠바 조선인이 송금한 독립운동자금은 총 1,499달러였다고 한다. 이 일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임천택이었고 그는 쿠바 조선인을 위한 한글학교를 설립하고 독서회와 청년단체도 설립하였다. 해방이 되었지만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고 1988년 쿠바 마딴사스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마딴사스에 세워진 추모비

 


 영화는 마딴사스에 세워진 추모비를 의미있게 조명했다. 고향땅을 향해 서 있는 추모비는 한옥 지붕을 해 한국을 상징했다. 임천택의 아들 헤로니모 임이 쿠바한인들의 결집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이다. 쿠바 한인들은 매년 이곳에 모여 쿠바에 온 초기 한인 이주자 288명을 기억하고 쿠바한인회를 위해 힘써온 임천택, 임은조의 정신을 상기하는 장소가 되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임은조의 손자가 등장한다. 디큐멘터리 제작진과 함께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동행했던 손자는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 역시 코리언임을 되새기며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나갈 것임을 다짐한다. 쿠바한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타반주에 맞추어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은 먼 이국타향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라 생각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멍해지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재미동포 차세대 전후석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125일 재외동포재단 전문가 워크숍에서 재외동포 차세대 정체성과 차세대 네트워크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30분간 발표한 전후석 감독은 재미동포 차세대로서 경험하고 깨닫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5살 때 한국에 와서 살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시 미국으로 가서 생활을 하였다. 이때부터 정체성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중국적 상태에서 끝내 미국국적을 선택했을 때 한국에서는 유승준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이로 인해 20대에 들어선 전후석은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미국화의 길을 갔다.

대학생이 된 전후석은 정체성 고민을 심도있게  해준 강의를 듣게 된다. 바로 1992년 발생한 LA폭동 사건이다. 미국사회내 여전히 흑백분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막대한 피해를 본 사람들은 한인들이었다. 왜 한인들이 피해를 봐야했을까?  흑인들로부터 분풀이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한인사회는 책임있는 미국시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자아성찰과 더불어 권력신장에 관심을 갖는 변화를 맞게 되었다.

 직접 경험한 사건은 아니지만 강의를 통해 LA폭동사건을 공부하게 된 전후석에게도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Korean America Students Conference(KASCON)을 조직해 대표로 활동하고 재외동포재단과 연계되어 재외동포 차세대 연수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중국 연변에 있는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1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조선족 친구들도 만났다. 전후석은 연변은 또다른 한국이라 생각들었고 또다른 정체성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면서 조선족은 중국인이라 인식하면서도 자신을 사과배와 같다면서 이중 삼중의 정체성 고민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이 있어 탈북민도 만나보았다. 역시 이들도 정체성 고민을 하고 있었다. 변호사 인턴기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공에서 생활하면서 이곳에 사는 한인 친구들도 만났다. 자신과 같은 정체성 고민을 하고 있는 한인청년 세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헤로니모 영화제작에 뛰어든 이유


전후석의 코리언 아메리카로서의 정체성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그러던 차에 쿠바 여행 중 헤로니모의 딸을 만났을 때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로니모 이야기에 푹 빠진 그는 인생의 대스승, 깨달음을 준 선각자를 만난 것처럼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4년간 해온 변호사 활동을 접고 헤로니모를 알리는 영화제작에 몰두하였다. 제작비도 모금과 후원으로 마련하고 직접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녀야했다. 3년이 걸렸다. 헤로니모 영화제작 이유에 대해서 전후석은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한국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해외동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디아스포라로서 한반도에 주인의식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명감이라는 표현에 주제발표 서두에서 디아스포라가 국운을 좌지우지할 것이라 믿는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첫인사를 건넨 전후석이 다시 떠오른다. 구글 위키피디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성이 결여된 나라로 대한민국이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유태인을 많이 연구했다는 그는 디아스포라는 철저히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 속에서 혁신이 나온다고 말하는 유태인 랍비의 영상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넣어 메시지를 주었다.

 

한국인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

 

영화는 다소 투박하고 건조해보였지만 디아스포라 한인, 그들은 누구인가? 심도있게 생각해보게 만든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지난 1121일 개봉한 영화 헤로니모는 128일 현재 관객수 8,657명을 기록하고 있다. 상업영화와 같은 흥행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국인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 “디아스포라의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을 알게해 준 영화.” “전후석 감독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영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쿠바의 한인에 대한 기록을 알려주는 유익한 영화라는 응원의 감상평들을 올려주었다. 감상평에는 헤로니모 임이 사회주의 노선의 쿠바혁명에 참가한 인물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잘 몰랐던 쿠바한인의 이주역사를 알게 해주고 동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준 좋은 영화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본문은 2019년 12월 5일~6일 일정으로 열린 재외동포재단 전문가워크숍 참가 후기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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